만화는 발로 그리는 것

허영만은 한국에서 제일 바쁜 창작인 중 한명이다.

매일 두 편의 만화를 일간신문과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연재하고 있다.

지난 2002년 <식객>은 한국의 다양한 음식을 소재로 다뤄었으며, 2008년 <꼴>은 사람의 얼굴 생김새를 통해 성격을 파악하는 관상법이 소재였다. 

매일 10페이지씩 연재하고 있으니까 하루에 50~60여 컷의 만화를 그리는 셈이다.

박석환(이하 박) : 많이 바쁘시죠?

허영만(이하 허) : 뻔히 알면서 물어요.

박 : 30년 넘게 바쁘셔서 안 바쁜 것이 뉴스일 것 같아서 묻는 거예요

허 : 만화만 그렸는데도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많네요. 그러다보니 한 해, 한 해 갈수록 더 바빠져요. 만화만 그릴 수 있게 해주면 좋은데 부르는 곳도 많아져서….

허영만의 만화는 만화가적 상상력과는 거리가 멀다.

그동안 만화에서는 잘 다루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큰 분야를 다룬다. 그만큼 철저한 문헌 조사와 전문가 인터뷰, 현장 취재와 사후 검증 과정이 필요하다.

박 : 너무 어려운 소재만 선택하시는 것 같아요. <식객>만 해도 계절에 맞춰 음식 선정하고 맛 집 취재하고, 관련 문헌 조사해서 일일이 검증해야 하고. <꼴>도 유명인사들의 얼굴 생김새를 분석 사례로 제시하고 있으니 사전조사와 연구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허 : 어렵고 쉬운 게 뭐 있나요. 내가 알아야 그리니까 찾아다니는 거죠. 모르는 걸 함부로 그릴 수는 없잖아요. 그동안 역사물이랑 SF물은 안 했어요. 못했죠. 내가 직접 확인하고 그려야 되는데 과거로 갈수도 없고 미래로 갈수도 없잖아요(웃음).

박 : 만화는 사실전달보다 상상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은데요. 너무 자료에만 집중하는 건 아닌가요?

허 : 진짜 이야기는 대충해도 믿지만 거짓말은 진짜처럼 하지 않으면 재미가 없어요. 만화는 재미가 생명이라고 생각해요. 재미있으려면 진짜 같아야죠. 자기 생각만으로 진짜처럼 그릴 수는 없어요. 다 잘 해놓고 음식 하나 잘 못 그려 넣으면 독자들이 읽다가 금방 작가를 의심하게 돼요. 독자의 재미를 빼앗는 셈이죠. 그래서 그림 한 컷, 대사 한 줄 멋대로 쓸 수 없는 거예요. 직접 현장에 나가서 사진도 찍고 인터뷰도 해야죠. 만화는 발로 그려야 합니다. 이야기는 책상에 있는 게 아니라 현장에 있어요.

허영만의 만화에는 흥미로운 소재뿐만 아니라 진한 감동과 삶의 통찰이 묻어나는 이야기가 있다.

적당한 분량의 지식과 정보가 담겨 있고 심심하지 않을 만큼의 유머와 과하지 않을 정도의 주장도 찾을 수 있다.

한국의 독자들은 허영만이 이렇게 요리한 만화를 맛있게 소비해 왔다. 그리고 이제는 그 이야기를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게임 등으로 만나고 있다.

박 : 그동안 많은 작품이 영화, 드라마 등으로 만들어졌어요. 만들어질 때마다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른바 ‘허영만표’라는 브랜드가 생겼는데요?

허 : 영화나 드라마야 만드는 분들이 잘 만드니까 성공하는 거죠. 잘 만들 수 있는 분들에게 판권을 허락해주는 것뿐이죠. 만화 다르고 영화 다르니까 그 분야에 정통한 분들이 알아서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허영만은 그간 200여 타이틀이 넘는 만화 작품을 발표했다.

아동 대상 작품에서부터 성인 대상 작품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층을 아우를 정도로 두텁고 다양하다. 대표 작품 목록에 비슷한 소재가 없을 정도로 늘 새롭게 변신하고 있다.

소재뿐만 아니라 연출과 그림 형식도 소재나 대상 독자층에 맞춰서 변화 시켜 온 것이다.

박 : 작품 목록을 보면 과거에는 아동 대상의 작품이 주가 됐는데 최근에는 성인 대상의 작품이 주가 됐어요. 또 최근 작품의 경우는 서사성보다는 정보성이 더 강조되는 것 같아요?

허 : 나도 나이가 들지만 나와 처음 연을 맺었던 독자들도 지금은 모두 어른이 됐으니 거기에 맞춰 가는 거죠(웃음). 그리고 창작만화 시장이 위축되는 것에 비해 교양만화 시장이 커지고 있는 것도 한 이유인 것 같아요. 독자들의 성향도 많이 바뀐 것 같고요.

박 : 해외에 소개된 작품은 어떤 것이 있나요? 혹시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나 국가가 있을까요?

허 : 청소년 대상 작품이었던 <비트>, 재일교포로 일본 프로야구 선수로 활동했던 장훈씨의 일대기를 그린 <질 수 없다>, <식객> 등이 아시아권에 소개된 정도예요. 현지 독자들의 성향과 사정에 밝은 국내 에이전시가 걸 맞는 작품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개인적으로는 일본에 소개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만화 선진국이고 시장도 크니까 정면 승부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박 : 긴 시간 감사합니다.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이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허영만은 만날 때마다 같은 모습이다.

머리숱이 줄어드는 것 외에 변화를 찾기 어렵다.

시기별로 큰 변화를 보여주는 작품과 달리 늘 같은 모습이다.

적당히 여유 있고 과하지 않을 만큼 자신감이 넘쳤다.

쉬지 않고 독자들의 요구와 시대의 흐름을 작품에 반영해 온 탓일까.

70을 넘긴 할아버지임에 분명한데 청년처럼 열려있다.

* 이 인터뷰는 몇 차례에 걸친 인터뷰와 전화 통화 내용을 기초로 필자가 재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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