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교수의 만화이야기] 한국 만화계의 큰 바위 얼굴-이두호
[박석환교수의 만화이야기] 한국 만화계의 큰 바위 얼굴-이두호
  • 박석환 칼럼리스트
  • 승인 2019.04.21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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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 데뷔 이룬 천재 만화 소년

이두호는 1943년 경상북도 고령에서 태어났다.

다산 초등학교 재학시절부터 각종 사생대회에서 입상을 하는 등 미술에 재능을 발휘했다.

6학년이 되던 해에 이미 인생의 진로를 결정한 이두호는 학교 미술교사였던 남무오를 따라 대구에서 자취를 하며 미술 공부를 계속한다. 

궁핍한 가정 형편 탓에 제대로 된 미술 공부를 할 수 없었지만 남무오의 배려로 낮에는 화실에서 일을 도우며 수채화를 배우고 저녁에는 야간 중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화실 생활 중 만화출판인 유명수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중학교 2학년 때 128페이지 분량의 단행본 만화 ‘피리를 불어라’를 창작한다.

당장 돈을 벌어서 생활비에 보탤 수 있다는 생각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길’ ‘등불’ 등의 작품 창작과 출판으로 이어졌고 1959년에는 ‘대구매일신문’의 신춘만화공모에 입선하기도 했다.

이두호는 1964년 홍익대학교 미대 서양화과에 합격해 서울 생활을 시작한다.

이미 만화로 돈을 버는 프로작가였지만 이는 생계를 위한 수단이라 생각했을 뿐 미래의 직업이라 여기지 않았다. 만화 일을 중단하자 금방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생활비는 고사하고 재료비 살 돈이 없어서 학교 수업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학교를 휴학하고 군에 입대한 이두호는 제대 후에도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만화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미술에 대한 미련이 희석됐기 때문이다.

이두호는 1968년 당대의 인기 만화가 박기정 문하에 입문, 본격적인 만화가 수업을 받는다.

오랜 미술 수련 과정으로 탄탄한 데생력이 있었고 이미 작품 발표 경험이 있었던 터라 박기정 문하에서는 만화 연출과 스토리 구성 등에 대한 지도를 받았다.

그만큼 다른 문하생들에 비해 빠르게 독립할 수 있는 기회도 잡았다.

때마침 만화를 중심으로 내세운 소년 교양잡지 ‘소년중앙’이 창간되면서 이두호의 역할이 강조됐다. 

잡지 발행에 필요한 시각적 요소 전반에서 이두호의 회화적 역량이 필요했다.

자신의 만화체 외에도 다양한 그림체를 표현 할 수 있었던 이두호는 표지, 삽화, 도안, 부록만화 등 잡지 편집 전 분야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했다.

한국적 형식과 내용을 만든 만화가

 

이두호가 중학 데뷔 이후 직업인으로서 만화를 그린 첫 작품은 1969년 ‘소년중앙’에 연재됐던 ‘투명인간’이다.

당시 만화계에서는 명작 소설이나 외국 영화의 내용을 만화화해서 게재하는 이른바 ‘우량만화’가 다양한 방식으로 발표됐다. 한국 사람이 아닌 서양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만큼 그림 풍에 있어서도 서구적 화풍이 필요했는데 이두호는 이 같은 작업에 능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망가풍 작품을 우리 식으로 번안하는데도 능했다.

두 작업 방식은 화풍이나 연출 면에서 전혀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었지만 당시 이두호에게는 안 되는 일이 없었다.

만화출판계에서는 ‘이두호만 있어도 만화잡지 한권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당시 문화예술계 전반에서는 외국의 선진 문물을 우리식으로 차용해 재제작하는 것도 하나의 작업 방식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이두호는 편집부의 요청에 따라 ‘6백만 불의 사나이’ ‘뿌리’ ‘벤허’ 등 다수의 미국 영화와 드라마를 소재로 한 서구풍 만화를 그렸다.

또한 편집부가 제공한 일본만화책을 참고해 ‘무지개행진곡’ ‘하나 둘 셋’ ‘타이거마스크’ 등의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이 같은 작업으로 궁핍했던 생활이 안정기에 접어들자 이두호는 열병처럼 순수 회화에 대한 갈증에 휩싸였다.

팔매, 까묵이와 얄숙이 등 자신의 독창적 캐릭터와 작풍이 만들어지던 시기였지만 ‘우리 이야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를 만화로 옮기는 것’뿐인 자신의 작업에 염증을 느끼기도 했다.

1978년 이두호는 만화 작업을 화실 동료였던 한희작에게 위임하고 순수 회화 창작에 매진한다.

살풀이라도 하듯 3년 여를 회화에 매달렸던 이두호는 1980년 말 소년만화 ‘암행어사 허풍대’ 1981년 성인만화 ‘바람소리’를 발표하며 만화계로 돌아온다.

회화 작업을 하면 할수록 자신이 해야 할 만화의 내용과 형식이 선명해졌다고 한다.

자신이 원했던 회화가 아니라 자신을 택해준 만화를 직업적 책임감을 지니고 그리기로 한 것이다.

이후 이두호는 ‘조선이라는 신분사회를 배경으로 온갖 시련과 핍박 속에서도 저항 정신을 잃지 않았던 민초들의 삶’을 자신이 그려가야 할 한국적 만화의 테마로 삼았다.

이왕 만화가가 되기로 했다면 외국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 한국적인 만화를 그리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후 이두호는 회고적 단편 만화 몇 편을 제외하고는 일생을 시대극 만화 창작에만 매진했다.

이두호의 조선 시대극 중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 ‘머털도사’ 시리즈이다.

만화 ‘머털도사’는 머리털을 뽑아 도술을 부리는 머털이의 수련과 도전, 모험과 대결을 그린 아동만화이다.

1984년 잡지 ‘새벗’에 연재된 ‘도사님, 도사님, 우리 도사님’을 원안으로 한 시리즈물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털삼이였다. 털삼이의 스승은 맨발도사.

1985년 연재 매체를 ‘소년경향’으로 옮기면서 작품 제목을 ‘머털도사님’으로, 주인공의 이름을 머털도사와 누더기도사로 바꿨다.

1989년 어린이날 특집으로 제작 방영된 TV애니메이션 ‘머털도사’가 시청률 58%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면서 만화원작의 제목도 ‘머털도사’로 변경했다.

도서출판 새소년, 1986-12-30 표지 제공_만화 규장각
도서출판 새소년, 1986-12-30 표지 제공_만화 규장각

 

가난하지만 평온한 누덕마을과 부귀영화를 쫓는 질악마을. 각 마을을 지키는 누더기도사와 왕질악도사 그리고 도사의 수제자인 머털이와 꺽꿀이. 의도적으로 단순화 한 세계관과 권선징악을 중심으로 한 서사구조, 각종 언어유희와 개그컷, 단순 명확한 캐릭터 간 대립요소와 대결구도 등 아동 독자의 흥미와 몰입도를 극대화 할 수 있는 요소로 가득하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가 머리털을 뽑아 도술을 부려 적을 처단하는 손오공 유의 대전물로 전개되는 것도 아니다.

누덕마을 사람들의 자연주의적 삶과 질악마을 사람들의 개발주의적 삶을 대비시키며 우리사회의 ‘개발 제일주의’를 풍자하기도 하고 물질주의가 낳은 탐욕을 비판하기도 한다.

‘머털도사’가 인기를 끌면서 ‘머털도사와 108요괴’ ‘머털도사와 벌레대왕’ ‘머털도사와 또매형’ 등의 시리즈 만화가 발간됐고 동명의 TV애니메이션도 총 3편이 제작 방영됐다.

‘머털도사’는 80년대를 대표하는 만화이자 90년대를 대표하는 TV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다양한 캐릭터상품과 게임 등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웹툰 ‘웃지않는 개그반’의 작가 현용민의 패러디웹툰 ‘도대체 왜?인구단’에는 머털도사를 패러디한 ‘켜털도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2012년 EBS판 TV애니메이션 ‘머털도사’가 26부작으로 새로 제작되어 방영되기도 했다.

 

조선의 역사 속에서 민중의 힘과 정서를 찾아 낸 연구자

‘머털도사’가 이두호 식 아동만화의 대표작이라면 성인극화로는 ‘임꺽정’이 꼽힌다.

만화 ‘임꺽정’은 1559년(명종 14년) 경 황해도 지역에서 관군과 대립하며 조선 전체를 뒤 흔들었던 ‘임꺽정의 난’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벽초 홍명희가 1928년부터 10년 간 ‘조선일보’에 연재한 소설을 바탕으로 했다.

홍명희는 ‘명종실록’ 등에 기록된 몇몇 사료를 바탕으로 임꺽정의 이야기를 ‘나의 복안으로 사건’을 꾸미되 ‘순조선 것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이두호 역시 이 같은 방식을 취했다.

몇몇 사료를 바탕으로 ‘이왕이면 우리 것을 그리자’했고 ‘백정의 아들을 진정한 우리의 영웅으로 그려보리라’고 했다.

몇몇 역사적 사실과 실존인물을 제외하면 등장인물의 이름과 역할, 갈등요소와 각종 사건들을 새롭게 재구성해 홍명희의 소설과는 다른 이두호의 ‘임꺽정’을 만들어냈다.

소설 ‘임꺽정’은 명종 시대의 정치적 혼란상과 지배계층의 부도덕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도적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배경에 많은 부분을 할애해 일반적인 영웅전기물의 구성을 피했다.

반면 이두호의 만화 ‘임꺽정’은 남치근이 이끄는 관군에 쫓겨 최후를 맞이한 임꺽정의 모습을 강조하면서 시작된다.

임꺽정은 그로부터 7년 전 왜구에게 포위된 남치근을 위기에서 구한 적이 있는데 이 때 남치근은 임꺽정이 백정이라는 것을 알고 ‘사람 속에 백정이 낄 수는 없지’라며 말을 돌린다.

곧이어 등장하는 소년 시절의 임꺽정 역시 양반집 도련님을 혼쭐내고 피신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임꺽정은 이 과정에서 무술 실력을 키우고 사회적 의식을 일깨워주는 스승과 만나게 된다.

이 같은 도입부의 차이는 만화 ‘임꺽정’이 소설과는 달리 체제 저항적 영웅 서사에 집중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물론 만화는 임꺽정의 다분히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기도 한다. 민중의 영웅이기도 했지만 백정으로 태어나 ‘그저 그렇게 살게 됐을 뿐’이라는 점도 강조한다.

이 같은 진술 방식은 만화의 극적 사실성을 강화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이두호는 한 편의 시대극을 창조하기 위해 그 시대의 인물상, 복식, 언어습관, 생활태도, 각종 도구와 제도 등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찾아내 작품의 얼개를 만들었다.

그렇게 해도 찾아지지 않는 것들은 관련 연구자들과의 인터뷰나 사적지 방문 등을 통해 얻었고 그래도 되지 않는 것은 여러 사료들을 바탕으로 인과관계를 재구성해 상상력으로 복원해 내기도 했다.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이두호의 작업 방식은 그 자체가 하나의 연구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두호의 <임꺽정>은 1991년부터 ‘스포츠조선’에 5년 3개월 동안 연재됐고 1995년 프레스빌에서 단행본 전21권으로 출판됐다.

같은 해 문화체육부 선정 한국만화문화대상을 수상했다. 1996년 방영된 정홍채 주연의 SBS 드라마 <임꺽정>은 홍명희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지만 캐릭터 설정이나 주요 에피소드 등이 이두호 <임꺽정>을 토대로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002년 자음과모음에서 전32권으로 복간됐다. 2013년에는 프랑스의 파케 출판사에 의해 불어판 전10권(권당 600페이지 분량)이 발간됐다.

만화가의 직업의식과 작가 정신을 설파한 스승

이두호는 대부분의 만화 작업을 조선시대 이야기에 집중한 ‘바지저고리 만화가’로 불린다.

그리고 이 같은 수사와 함께 따라 붙는 것이 ‘만화 스승’이라는 존칭이다.

1996년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로 임용 된 뒤 2008년 정년퇴임 때까지 학생들을 지도한 것도 한 이유가 됐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만화계의 여러 사람들은 이두호를 선생님이라 불렀고 스승이라 칭했다.

만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호의적이지 않던 시절 만화를 직업으로 선택했던 만큼 만화가가 지녀야 할 덕목과 가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실천적으로 해법을 제시해 왔기 때문이다.

이두호는 일본만화의 영향권 아래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자신의 만화에서 왜색을 걷어내기 위해 만화가로서는 치명적일 수 있는 소재의 제한을 선택했다.

조선시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함으로서 먼저 한국적 형식을 취하고 내용이나 정서까지 전환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같은 시도는 이두호 만화의 독자성과 순수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했다.

이두호는 1993년 ‘두손이’로 YWCA 선정 우수 작가상, 1995년 ‘임꺽정’으로 문화체육부 선정 한국만화문화대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만화의 다름을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히기도 한다.

만화는 통상 과장과 풍자의 미학이라 불린다.

그만큼 표현과 묘사에 있어서 신중을 기하지만 이로 인해 사회적 문제가 야기되기도 하고 정치적 시비를 만들기도 한다.

특히 만화가 아동과 청소년의 접근성이 큰 매체라는 측면에서 다른 매체에 비해 표현 수위가 제한 받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1997년 만화 ‘천국의 신화’와 스포츠신문 연재만화에 대한 음란물 판정 시비, 그리고 청소년보호법 제정과 함께 등장한 만화 유해매체물 논란은 이 같은 만화계의 문제의식과 사회적 인식이 충돌했던 시기였다.

이두호는 이 시기 ‘만화 표현의 자유 수호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공동대표, 1998년부터는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을 맡아 한국만화의 표현수위를 확장하기 위한 활동에 매진했다.

당시 일본문화 개방 정책으로 일본만화가 대규모로 수입되던 시기였던 터라 한국 만화가의 표현 수위를 제한하면 수입 일본만화에 한국만화계가 점령 당한다는 인식이 강했었다.

2004년에는 부천만화정보센터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며 만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 재고를 위해 노력했다.

그 간의 작품 활동 성과와 이 같은 공적을 인정받아 2004년 코믹어워드 대상, 2006년 고바우만화상, 2007년 보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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