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정당의 관점에서

 

가히 ‘대 포퓰리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세계 곳곳에서 좌우 포퓰리즘 정치가 득세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브렉시트 충격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돼 전 세계에 파장을 가져다 줬다.

프랑코 독재정권 이후 극우정당이 오랫동안 맥을 못 추던 스페인에서도 최근 반이민 이슈를 등에 업고 극우 정당이 의회에 진출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반대로 영국과 미국에서는 제레미 코빈, 오카시오 코르테스 같은 급진 좌파 정치인이 이례적으로 청년대중의 지지를 얻는 현상이 벌어졌다.

이런 포퓰리즘 정치에 대해 ‘중우정치’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 동안 정치적 결정에서 소외된 대중이 ‘평등’과 ‘인민주권’이라는 민주사회의 중요한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 번역 출간된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의 저자인 샹탈 무페가 대표적이다.

이와 별개로 최근 포퓰리즘 정치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산층의 붕괴, 일자리의 불안정, 청년실업의 증가 같은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배경으로 득세하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생활고에 시달리다보니 중도성향의 유권자마저도 보다 과격한 정치이념에 끌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정치경제학(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이 아니라 신고전파 주류경제학 기반의 정치경제학임에 주의하자) 이론에 따르면, 변한 것은 정작 유권자가 아니라 기존의 정치와 제도일 수 있다.

왜 그런지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자.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만 해도 정치경제학에서 가장 각광받았던 이론은 바로 ‘중위 투표자 정리(median voter theorem)’이다.

내용을 약간 각색해서 설명하면 대략 이렇다.

극좌에서 극우까지의 이념 스펙트럼을 나눌 때 모든 유권자들이 이념 스펙트럼 상에서 중도파를 중심으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때 가장 중도적인 유권자가 양당제 선거의 승패를 좌우한다.

이유는 이렇다.

모든 유권자는 이념 스펙트럼 상에서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이념에서 더 멀리 떨어진 이념보다는 그나마 좀 더 가까운 이념을 지지한다.

예를 들어 중도우파 성향 유권자라면 극좌 정치인보다 중도파 정치인을 그나마 더 선호한다.

그렇다면 가장 중도적 이념을 선호하는 유권자 즉 ‘중위 투표자’가 양당제 선거의 승패를 좌우한다.

예를 들어 A 정당이 가장 중도적인 정책을 내세우고 B 정당은 중도좌파적인 정책을 내세운다고 생각해 보자.

이때 극좌와 중도좌파 유권자는 B 정당을 지지하겠지만, A 정당은 극우와 중도우파 유권자뿐만 아니라 중도파로부터 지지를 얻는다.

결국 선거에서 다수파를 차지하고 승리를 거머쥐는 측은 A 정당이다. ‘

중위 투표자 정리’란 결국 가장 중도적인 유권자가 선거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한다는 잘 알려진 상식을 설명한다.

또한 ‘중위 투표자 정리’는 구소련 붕괴 이후 선진국 좌우 정당이 왜 중도적 이념으로 ‘수렴’했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앞선 예에서 중도좌파였던 B 정당이 자신의 당선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합리적 정당이라면 이후 중도적 이념으로 옮겨가게 될 것이다.

결국 선거는 중도파 유권자의 마음을 얻기 위한 경쟁으로 변하게 된다.

실제로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대처 정부 이후의 우파도 사회복지 정책을 내세우며 대중의 지지를 호소했다.

좌파도 ‘문제는 경제야’라는 선거구호를 내세운 클린턴과 ‘제3의 길’을 내세운 블레어 같은 중도주의 노선을 수용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좌우의 차이는 0으로 수렴했다.

내친 김에 말하자면 과거 안철수가 내세운 ‘극중주의’도 ‘중위 투표자 정리’의 논리를 충실하게 계승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포퓰리즘 정치의 득세를 보면 이러한 이론이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오히려 선명한 좌파와 우파가 선거의제를 주도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많은 논자들은 이것이 민심이 변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최근 정치경제학 이론은 유권자의 이념성향과 분포가 전혀 변하지 않아도 포퓰리즘 정치가 충분히 득세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중도파를 자처한 기존 정치세력이 유권자로부터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우선 정보의 ‘잡음(noise)’이 없는 투명한 정치세계라는 가정을 벗어 던져야 한다.

현실의 정치세계는 정보의 불완전성과 불확실성이 지배한다.

예컨대 정치인이 표방하는 이념과 실제 정책은 얼마든지 괴리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우파 엘리트 그룹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치인을 은밀히 매수하거나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겉으로 중도파를 표방한 정치인도 반대급부로 자신이 약속한 것보다 더 오른쪽으로 치우친 정책을 실행하려는 유혹을 느낄 것이다.

이때 중위 투표자는 원래 지지했던 정치세력이 자신에게 보내는 시그널을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선명한 급진좌파 정치인이 ‘매수될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적으므로 그나마 나와 가까운 정치를 펼칠 것’이라는 기대를 중도파 유권자로부터 얻을 수 있다.

이것은 지금 남미와 유럽 그리고 영미권 일각에서 좌파 포퓰리즘이 힘을 얻는 현상을 그럴듯하게 설명한다.

이 분석을 반대로 우파 포퓰리즘 정치가 득세할 가능성으로 확장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예컨대 소수 조직노동과 고학력 엘리트 진보주의자(피케티의 표현대로라면 ‘브라만 좌파’)가 집권 중도좌파 정당의 의사결정권을 장악한 경우라면 우파 포퓰리즘 정치가 중도파 유권자들에게 호소력을 갖게 된다.

그리고 반대로 소수의 부자 엘리트(피케티 왈 상인 우파)가 집권 우파정당을 주도한다면 중도성향의 시민들도 좌파 포퓰리즘에 귀를 기울인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직면한 전세계 지구촌의 모습이다.

이처럼 포퓰리즘 정치란 정보의 불확실성과 제도의 불완전성이 상존하는 세계 속에서 유권자와 정당의 전략적 행동이 맞물린 결과이다.

이 이론에서 진보정당은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우선적으로 ‘중위 투표자 정리’가 이야기하듯이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여전히 중도성향 유권자들이다.

이때 진보정당이 이들의 가치관과 신념을 우격다짐으로 바꾸려 하는 것은 시간낭비이다.

많은 진보적 활동가들은 계몽주의적 선전으로 세력을 넓힐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곤 한다.

그러나 불확실성과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 진보정당은 유권자로부터 ‘적어도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다’는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다.

특히 소수 그룹이 의사결정을 독점하지 않도록 대중참여의 문턱을 최대한 낮추고 당내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진보정당은 사회경제적으로 부자증세, 청년상속, 기본소득, 자산 및 소득 상한제, 확장적 재정 정책 등에서 선명성을 추구해야 한다.

특히 부자 엘리트와 특권층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는 상황이라면 이러한 전략은 오히려 중도성향 유권자들에게도 어필하는 유리한 전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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