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간 가까운 비행이 끝났다. 이날도 기내식은 날 힘들게 했다.
유독 나만 그런 건가, 다들 그럭저럭 먹는 거 같은데 난 도통 기내식은 못 봐주겠다.
게다가 이번 비행은 속까지 울렁거린다. 난 정말 비행기 체질이 아니다.
가까운 지인이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날 픽업 나오기로 하였다.
픽업을 나올 정도면, 나에 대해 엄청난 사랑 비슷한 감정이 있을 거 같아 보이겠지만 그런 건 아니었다.
난 그가 부탁한 장난감을 챙겨가야 하는 미션을 가지고 있었고, 일종의 ‘미션 수행에 대한 대가’가 바로 ‘픽업’이었던 셈이다.
그는 날 위해 여기저기 맛집과 분위기 좋은 카페를 검색해본 분위기였다.
그런데 비행기에서 내리고 나니 배도 안 고프고, 뭘 먹어도 올라올 것 같은 느낌.
그나마 만만한 게 햄버거였다(사실 맘 같아선 얼큰한 김치찌개를 먹고 싶었다). 지인을 만나 “햄버거면 충분하다”고 하였다.
다행히 지인도 ‘괜찮은 햄버거집’을 검색해 놓은듯했다.
출국 전 ‘쉑쉑 버거’를 먹을 때의 감흥 같은 건 기대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섭취한 음식이 다시 입을 통해서 밖에 나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햄버거집 도착.
지인 말론 샌프란시코에서 유명한 햄버거집이란다. 이름, SUPER DUPER. ‘슈퍼 버거’를 주문하니 웬 코팅된 번호표를 준다.
무슨 어릴 적 캠프 조 깃발 같은 그 번호표를 들고, 밖에 나가 자리를 잡았다. 적당한 타이밍에 종업원이 두툼한 햄버거를 들고 등장했다.
적당히 자연스러운 미소와 함께.
햄버거가 좋은 건 손으로 먹는 음식이라는 점이다.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도 손으로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햄버거는 지극히 원초적인 음식이다.
맛있게 먹는 사람과 맛없게 먹는 사람의 구분이 어렵다. 능숙하게 먹는 사람과 어설프게 먹는 사람의 구분이 어렵다.
고로, 이 날 난 뭘 먹어도 맛있게 먹기 힘든 컨디션이었지만, 햄버거를 먹은 덕분에 ‘지인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햄버거는 참 무덤덤하다. 상대방에게 그리 큰 열정 같은 걸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참 편한 상대다.
내 입맛엔 좀 짰다는 것 빼곤 먹어줄만했다. 컨디션만 좋았다면, 꽤 맛있게 먹을 수도 있었을 햄버거였다.
바람도 쐴 겸 야외에 앉아 햄버거를 먹는데 하필 가늘게 빗줄기가 내려왔다.
뭐, 그래도 괜찮다. 햄버거는 까다롭지 않으니, 야외에서 먹어도 괜찮다.
아주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비가 와도 한 손으론 햄버거를 들고 한 손으론 우산을 쓰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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