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해외 진보 정치인의 이론적 자원으로 활용되면서 현대화폐이론(일명 MMT)이 유명해졌다. 미국의 정치인 오카시오 코르테스는 이를 근거로 현대판 ‘그린 뉴딜’ 정책을 발표했으며, 영국의 노동당 당수 제레미 코빈은 ‘인민을 위한 양적 완화 정책’을 발표했다.

현대화폐이론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정부는 화폐를 ‘만들어내는’ 주체이기 때문에 정의상 어떤 경제주체로부터도 '빚'을 지지 않는다. 설사 정부가 빚을 지는 것처럼 보여도 이는 겉보기에 불과하다. 정부는 원한다면 얼마든지 돈을 찍어내서 자신이 필요로 하는 지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가 지출을 통해 투입한 화폐는 경제 내에서 일련의 순환과정을 거쳐 세금을 통해 다시 정부로 회수된다. 조세를 거둬서 지출을 한다고 생각하는 보통의 경제학 및 재정이론과 달리 MMT론자들은 정부지출이 먼저고 조세는 나중에 온다고 생각한다. 파격적인 사고방식이다.

벌써부터 ‘이건 반칙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정부는 기업과 가계와 달리 유일하게 경제 내에서 ‘치트키’를 쓸 수 있는 주체이다. 정부는 '버는 만큼 쓰는' 가계와 기업과 달리, '쓰는 만큼 버는' 유일한 경제주체라고 할 수 있다. ‘쓰는 만큼 번다’는 말은 예전에 저명한 경제학자 니콜라스 칼도어가 자본가들의 투자행태에 대해 했던 말이지만, 여기서는 정부에 더 들어맞는다. 정부지출은 세입에 엄격히 좌우되지 않는다는 진실이 드러나는 극명한 경우는 전쟁과 같은 위기국면이다. 정부는 전쟁에서 이긴다는 목표로 국민적 자원을 동원해서 탱크와 기관총을 만들지 재정균형을 고려해 가며 만들지 않는다.

물론 현실적으로 정부가 화폐를 찍어내서 자금을 조달하는 데는 여러 규제정치가 있다. 그러나 현대화폐론자들은 정부는 복잡한 규제 장치도 궁극적으로는 우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고 중앙은행이 이를 구입하면 실질적으로는 돈을 찍어내서 재정지출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서 돈을 찍어낸다는 것은 비유에 불과하다. 양적완화 당시 그랬듯이 중앙은행이 화폐를 창조할 때 하는 일은 내부 전산망에 엔터키를 몇 번 누르는 것뿐이다. 이를 근거로 일부 과격한 현대화폐론자들은 주류 경제학 교과서가 설명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라든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구분은 허구라고 주장한다.

또한 MMT론자들이 보기에 조세는 정부지출을 조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경제 주체들이 자국화폐를 사용하도록 정치적으로 강제하는 수단이다. 정부가 조세 납부 수단을 지정하면 납세자들은 이를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조세는 경기과열과 인플레이션시 정부가 경제에 주입한 화폐를 다시 회수하는 정책수단이다.

MMT 이론의 궁극적 모체는 케인스주의이다. MMT 이론은 전후 유명한 케인스주의 경제학자인 러너(Lerner)의 ‘기능적 재정론’에서 출발한다. 기능적 재정론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세입 세출의 균형’이 아니라 ‘실물경제의 균형’이다. 이들이 보기에 고도의 자본주의 경제는 만성적인 유휴설비와 실업 그리고 재고가 존재하는 '유효수요 부족' 상태이다. 이때 정부가 최종수요자로 나서야 실업과 경제침체를 극복할 수 있다. 고용과 복지가 부족할 때 이를 충족시키는 것을 정책목표로 삼아야지, 재정수지를 맞추는 것 자체를 정책목표로 삼으면 안 된다는 것이 기능적 재정론의 요점이다. 전자가 아니라 후자를 우선시하는 것은 목적과 수단을 전도시키는 일에 불과하다.

 

혹자는 정부의 과도한 재정지출이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까 우려하지만, 많은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경제적 생산능력 이상의 초과수요를 발생시키지 않는 한 재정지출은 반드시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나아가 MMT론자들은 정부부채가 ‘외채’가 아닌 ‘자국통화 표시 부채’인 한 정부부채 증가 그 자체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으며, 정부부채 증가는 역으로 민간이 보유할 수 있는 ‘건전한 자산’(국채는 가장 안전한 자산 중 하나이다)을 공급하고 기업의 수익성을 개선시켜준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국민경제 전체를 하나의 회계적 단위로 볼 때 정부가 적자를 봐야만 민간부문이 흑자를 본다. 그렇다면 반대로 정부의 지출능력은 무제한적이란 말인가? 이런 질문을 의식한 듯 혹자는 ‘국채 이자율’이 ‘경제성장률’을 상회하지 않는 한에서 정부는 재정지출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보다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기도 한다.

물론 MMT에 대한 여러 가지 경제이론적 비판들이 있다. 하지만 MMT론자들이 보기에 그 중 상당수는 이미 MMT의 이론적 사정범위 내에 들어가 있는 반론들일 뿐이다. 한편 과격파 MMT와 달리, 온건론자들은 MMT가 실제로는 ‘무제한적 화폐발행’을 통한 지출이 '항상' 바람직하거나 혹은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세입도 정부지출의 재원이 될 수 있지만 항상 유일하고 궁극적인 재원은 아니며, 경제상황이 좋지 않을 때 경기회복시까지는 세입 이상의 지출도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MMT를 둘러싼 논의가 주는 궁극적인 정책적 함의는 무엇일까. MMT에 비판적이든 우호적이든 오늘날 상당수의 경제학자들과 정책 결정자들은 정부의 재정을 어디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지출하느냐가 단기적인 세입=세출 균형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에 수긍하기 시작했다. 최근 IMF도 한국정부의 재정지출 규모가 너무 작다며 보다 확장적인 재정지출 정책을 권고하기도 했다. MMT론자들은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경기침체기에 균형재정 제약을 넘어서 재정을 확장하지 않으면 고용이나 복지를 확장하는 정책목표를 달성하는 데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최근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외치며 정규직 전환 정책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하지만 정규직은 정규직대로 비정규직은 비정규직대로 만족스럽지 않다. 비정규직들은 무늬만 정규직인 무기계약직 등으로 전환되며 임금과 복지의 향상을 체감하지 못한다. 정규직은 정규직대로 예산이 제약된 상황에서 비정규직들의 정규직 전환이 자신의 분배몫을 훼손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취업준비생인 청년들도 일자리가 가뜩 부족한 상황에서 일부만 정규직 전환이 된 것에 박탈감을 느낀다. MMT의 관점에서 보면 노동정책과 재정정책이 연동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대해 MMT가 지지하는 정책처방은 어떤 것일까. 우선 재정확장 정책 기조를 추구할 것, 그리고 시장과 기업이 제공하지 못하는 공공서비스를 늘리는 데 집중적으로 재정을 투입할 것, 더 나아가 해당 분야에서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고용을 늘리는 방향으로 재정을 투입할 것. 바로 이런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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