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4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정책비전 발표' 행사에 참석했다 . / 남기두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4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정책비전 발표' 행사에 참석했다 . / 남기두 기자

주 52시간 근무제가 개편 갈림길에 선 가운데 ‘노동 유연화’ 신호탄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노동정책이었던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해서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선택적 근로시간제(선택근로제)’를 대폭 확대하겠다며 주 52시간 근무제 개편 가능성을 시사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단위 기간을 정해 자유롭게 근무를 하되, 해당 기간 안에 주당 평균 근로시간인 52시간을 넘지 않도록 하는 제도다.

이에 대해 다시 장시간 근로에 시달릴 것을 우려하는 직장인들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연간 근로시간은 1928시간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약 1500시간) 대비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 ‘장시간 노동’ 다시 오나...

근로기준법상 주 52시간 상한제는 일주일에 기본 근로 40시간, 연장 근로 12시간을 법으로 규정한 것이다.

근로시간‧휴게‧휴일 적용 제외 업종은 △5인 미만 사업장 △농림·축산·수산업 △감·단 승인 근로자 △관리·감독·기밀 업무 등이다.

근로기준법은 주당 연장근로시간이 12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제53조제1항)하고 있으므로, 일주일 총 근로시간이 52시간 이내라고 하더라도 1일 법정근로시간 8시간을 초과한 시간은 연장근로이며, 이 연장근로가 1주일에 12시간을 초과하면 법 위반에 해당한다.

지난 6월 23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 브리핑을 별도로 열고 근로시간과 임금체계 개편을 골자로 하는 개혁 방향을 공개했다.

구체적으로는 현재 ‘주 단위’로 관리하는 연장근로 시간을 노사 합의에 따라 ‘월 단위’로 조정하는 주 52시간 근무제 개편을 꺼냈다. 연공급 중심의 임금체계도 직무·성과 중심으로 개선한다.

정부의 개정 방향에 따르면 그동안은 주당 초과근무를 12시간 이상 하지 못했다면 월 단위로 바꿔 첫째 주부터 마지막 전주까지 주당 40시간 근로를 했다면 마지막 주는 그간 쓰지 않은 초과 근무시간인 52.1시간(주당 12시간을 연평균인 월별 4.3주에 곱한 것)을 한꺼번에 적용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 주에 법정근로시간인 40시간에 52.1시간의 초과 근무를 추가해 최대 92.1시간 근로를 할 수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현재 주 52시간 근무제가 획일적이고 경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빗대 제도 개편의 의지에 힘을 보탰다.

아직 확정된 정책은 아니며 방향성만 발표한 것이지만 노동계는 경영계의 입장만 반영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중소기업까지 확대 시행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법을 또 개정하냐는 지적이다.

기업들은 주 52시간 근무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중대재해처벌법 등이 우리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불만을 제기해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2일 서울 도심에서 노동권 확대와 민영화 저지를 요구하는 ‘7·2 전국노동자대회’ 집회를 열었다.

이날 민주노총은 △임금‧노동시간 후퇴 중단 △비정규직 철폐 △차별없는 노동권 쟁취 △민영화 저지 등을 요구했다. 또한, 지난달 29일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간당 9620원으로 결정하면서 민주노총은 강하게 반발했다.

사실상 여전히 초과근무를 하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많은 점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제작사에 주 52시간 근무제 준수를 요구했다가 재계약을 못한 KBS 드라마 ‘미남당’ 스태프의 재계약 불발 사태는 현장의 노동 여건이 여전히 취약하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주로 제작사와 용역 계약을 체결하는 스태프는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27일 오전 서울 상암동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미남당’ 방영을 항의하는 기자간담회에서 이은규 전 MBC 드라마 국장이 불공정한 방송제작 현장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 남기두 기자 
27일 오전 서울 상암동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미남당’ 방영을 항의하는 기자간담회에서 이은규 전 MBC 드라마 국장이 불공정한 방송제작 현장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 남기두 기자 

장시간 꼼수 촬영이 빈번했던 드라마 제작 현실에서 드라마 스태프와 시민사회단체들은 장시간 노동이 제도화 할 수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윤지영 변호사는 “주 52시간 제도가 월 단위로 개편된다면 지금보다 더 적은 일당으로 더 많은 시간을 일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 해외는 ‘주 4일제’ 속속 도입

 영국의 70개 기업은 주 4일제 시범 운영에 돌입했다. 은행, 투자회사, 병원 등에서 3300명이 실험 대상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임금 삭감이 없는 주 4일제라는 점이다. 하루를 덜 일하면서도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일본에서는 특수산업기계 대기업인 히타치가 주 4일 근무제를 시행한다. 이런 변화가 결국 인재 유치에도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배경에 깔려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히타치는 근로자 1만5000명을 대상으로 1주일에 사흘을 쉴 수 있는 주 4일제를 2022회계연도 중으로 도입한다. 파나소닉도 도입을 준비 중이다.

벨기에는 지난 2월 주 4일 38시간을 근무할 수 있게 하는 노동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의회는 500명 이상 사업장에서 주 4일 32시간 근무 법안을 발의했다. 아랍에미리트는 금요일 오후부터 쉬는 4.5일제를 도입했다.

각국의 주 4일제 도입 시도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본격화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가 보편화된 데다 일과 삶의 균형인 ‘워라밸’이 중요시됐기 때문이다. 특히 IT 기술의 발전으로 노동시간과 성과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 시대가 되면서 근로시간 및 방식의 규제 필요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국내 산업은 제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아직은 일부 업종에만 적용 가능한 것으로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제조·뿌리산업에 주 4일제를 도입한다면 자칫 기업이나 국가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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