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 올댓 스포츠 제공
김연아 / 올댓 스포츠 제공

대한민국 사람들은 김연아를 향해 일종의 부채의식 같은 걸 갖고 산다.

요약하자면 이런 거다.

‘우리 연아가 우리들을 위해서 이렇게도 큰 기쁨을 주었는데, 너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느라 얼마나 고생했겠니…’ 이런 부채의식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은퇴 후에도 김연아는 일종의 신화(神話)다. 김연아는 여전히 국민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준다.

그 기운은 김연아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김연아에 대한 비판적 댓글이 달리면 그 비판적 댓글에 대한 훨씬 많은 댓글이 달린다.

김연아 / 올댓스포츠
김연아 / 올댓스포츠

 

예능계에 유재석이 있다면, 스포츠계엔 김연아가 있는 셈이다.

그들은 그들만의 자리에 서서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특권 같은 걸 누린다.

그러나 그 ‘특권’을 오롯이 그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대중들은 그 ‘특권’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유재석’을 보며 아픔이나 미안함을 느끼진 않는다.

왜, 유독 김연아를 보며 우리들은 기쁨 속에 늘 ‘아픔’과 ‘미안함’을 함께 품는 걸까?

그가 거둔 수많은 성취들 중에서도 정점은 아마도 ‘2010벤쿠버 동계올림픽’일 거다.

그가 프리스케이팅에서 준비된 모든 동작을 마무리하는 순간, 사람들은 ‘아, 실수 없이 끝나 정말 다행이다’…라며 꾹꾹 눌러둔 긴장감을 폭발시켰다.

그가 금메달을 수여 받으며 태극기를 바라보던 순간, 국민들은 김연아의 시선으로 태극기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김연아가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던 순간을 즐거워하던 사람들 중 대다수는 마음 한구석 ‘아픔’ 혹은 ‘미안함’ 같은 걸 간직해야 했다.

행여나 우리들이 그에게 가혹할 정도의 부담감을 안긴 건 아닌가,에서 오는 미안함일 테고, 그것을 묵묵히 온 몸으로 받아낸 그를 보며 느낀 ‘아픔’이랄까?

김연아를 잘 아는 방상아 SBS 해설위원이 그 날 해설을 마치고 울먹이며 “연아야, 고마워…”라고 하던 장면, 그의 고백엔 ‘아픔’과 ‘미안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것을 두고 우린 ‘김연아를 향한 국민적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연아를 향한 사람들의 환호 속에 일종의 ‘당위’가 숨어 있다면, ‘다른 애들은 다 그래도, 연아 넌 그러면 안 돼!’라는 식의 ‘경직된 양육 태도’ 같은 것이 숨어 있다면, 그걸 두고 과연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하게 예상할 수 있는 건, 김연아가 만약 공인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실수 같은 걸 한다면, 그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언제든지 차갑게 식어버릴 수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김연아라고 해서 무조건 사랑만 주라는 거냐?’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어쩌면 김연아를 향한 ‘국민적 사랑’의 기반 자체가 무척이나 허술할 수 있으며, 그건 정확히 말해 ‘국민들의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 ‘국민들의 기대’를 ‘거의 100%에 가깝게 수행하고 있는 한 청년’의 처절한 노력에 기반하고 있는지도 모른단 이야기다.

물론, 여기서 쓴 ‘처절한’이란 단어가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을 향한 순수한 열정을 흐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연아는 2014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그다지 납득할 수 없는 채점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어야 했다.

경기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연아는 울먹였다. 이 칼럼을 쓰며 그 영상을 다시 찾아보았다. 

김연아 / 올댓스포츠
김연아 / 올댓스포츠

 

벤쿠버 동계올림픽 당시 김연아를 향해 “연아야, 고마워…”라고 고백했던 방상아 SBS해설위원은 김연아를 보자마자 흐느끼며 “고마워 알지? 너 최고야…”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 영상을 본 필자 역시 마음속에서 어떠한 불같은 것이 쑤욱 하고 솟아올랐다.

그건 어떠한 이성적 논리를 요구하지 않았다.

이미 5년이 다 되어가는 그 영상에 난 또 다시 눈물을 흘려버렸다.

‘이것이, 여전히 김연아를 향한 나의 마음,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이구나…’ 싶었다.

그 후로 이어진 인터뷰에서 김연아는 ‘김연아답게’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또 다시 난 ‘미안함’과 ‘아픔’을 느껴야 했다.

김연아는 여전히 ‘당위’속을 오간다.

국민들이 만들어낸 ‘당위’ 속을… 개인이 거부하기엔 쉽지 않은 그 ‘당위’를 김연아는 여전히 훌륭히 수행 중이다.

김연아가 ‘당위’를 실제로 의식하느냐 마느냐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는 나 자신이 김연아를 보며 ‘그가 당위 속을 오가고 있다고’ 느끼는 마음, 그게 더 중요할지도 모르니.

“국민들이여, 반성하라”라는 식의 유치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난 오히려 김연아를 통해, ‘당위’로 움직이는 듯한 이 사회적 분위기를 비판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간절히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김연아가 그만의 길을 잘 닦아서 경쾌하게 걸어갔으면 좋겠다.

이미 잘 걸어가고 있지만, 내가 있는 자리에서 그를 향해 ‘응원 한 조각’을 보태고 싶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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