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기아타거즈 제공
선동열 /기아타거즈 제공

 

1.2. 이 밋밋한 숫자 앞에 ‘평균 자책점’이라는 말이 붙는 순간 ‘비범함’을 획득한다. 그리고 ‘평균 자책점 1.2’라는 이름 앞에 ‘통산’이라는 말이 자리하는 순간, ‘위대함’이 탄생한다.

통산 평균 자책점 1.2’, 이걸 굳이 ‘농구’라는 종목에 적용하자면, 어느 정도 기록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통산 평균 득점 30점, 그 정도면 적절하지 않을까. 아니, 개인적인 생각으론 ‘평균득점 30점’보다 ‘통산 평균 자책점 1.2’가 좀 더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두 기록 모두 위대한 건 매한가지다.

동네 야구가 아니라 ‘한국 프로야구’에서 ‘통산평균자책점 1.2’라는 기록을 남긴 선수는 ‘야구계의 국보’ 선동열이다.

선동열의 현역시절을 함께 호흡한 사람들이라면, 그 누구도 그가 ‘야구계의 국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거다.

그가 뛰었던 해태 타이거즈를 좋아했건 좋아하지 않았건, 현역시절 그는 분명 야구계의 국보 같은 존재였다.

게임을 지배했고, 게임을 마무리했다. 별다른 기복 없이 선수시절 내내 한국 프로야구를 완벽하게 장악했던 그는 국위선양도 확실히 수행했다.

일본으로 건너간 첫 해를 제외하곤 그 후로 이어진 3년의 시간 동안 일본 야구 역시 빈틈없이 공략하며 ‘정점에 가까운 그 어딘가에서’ 스스로 내려왔다.

마무리도 국보급이었다. ‘무등산 특급’은 ‘나고야의 태양’으로 커리어에 방점을 떡 하니 찍었다.

KBO 제공
KBO 제공

국보가 휘청거리기 시작한 건, 기아 타이거즈 감독을 맡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가 3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하자 팬들, 그가 젊음을 묻은 광주의 야구팬들은 “제발 그를 좀 경질하라”며 구단을 압박했다.

국보의 자존심은 ‘구차한 연명’을 허락하지 않았다.

감독 자리에서 내려왔고, 더 이상 프로야구 감독직에서 선동열을 찾아볼 순 없었다. 그래도 그때까진, 여전히 국보였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때, 휘청거리던 국보에게 결정적 타격이 날아왔다.

오지환을 중심으로 하여 선수선발 과정에 대한 여론의 공격이 시작됐고, 그는 오롯이 그 공격들을 받아내야 했다. 의혹은 충분히 합리적이었고, 그는 감독으로서 마땅히 그 의혹들을 해명해야 했다.

결국 금메달을 땄지만, 그보다 더 개운치 않은 금메달은 유례가 없을 정도였다. 선수들은 ‘무려’ 금메달을 땄음에도 불구하고 죄인처럼 입국장에 들어섰다.

개운하게 웃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선동열은 그 중심에 있었다.

손혜원 의원실 제공
손혜원 의원실 제공

그렇게 저물어가던 국보의 회복은 예상치 않은 데서 이루어졌다.

2018년 가을 국정감사에서 그가 손혜원 의원에게 손을 묶인 채로 얻어터질 때, 비록 손은 묶여 있지만 묶인 손 아래로 주먹을 불끈 쥐고 ‘국보의 자존심’을 굽히지 않을 때, 산산조각 난 것 같던 국보는 재조립되기 시작했다.

‘그래, 선동열도 그렇게 잘한 것은 없다만, 야구 경기 한 번 제대로 관람한 적 없어 보이는 너 같은 정치인의 터무니없는 매질을 얻어맞고 있을 만큼, 우리들의 국보 선동열은 허접한 존재가 아니란 말이야, 알았냐고!’ 전문성도, 진정성도 느껴지지 않는 국회의원의 지적질 덕분에 그는 야구팬들의 성원,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를 ‘감독의 자리에서 끌어내린’ 기아 골수팬(해태 타이거즈부터 이어진)들의 ‘국보 사랑’을 확인하였다.

 

선동열 기아타이거즈 제공
선동열 기아타이거즈 제공

 

그 후에 이어진 국보의 선택은 ‘국가대표 감독직 자진사퇴’였다.

내막이야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국보다운 선택이었고, 국보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다소 야비해 보였던 정운찬 KBO총재의 ‘동네골목대장만도 못한’ 핑계에 비해, 국보의 선택은 ‘국보의 품격’을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물론, 여전히 ‘오지환 선발’은 야구팬들에게 ‘분노의 용광로’이다. 다만, 그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그가 여전히 국보’임을 국민들로부터 확인받았다.

국보는 다시 ‘야인’이 됐다. 국보는, 그래도 국보다. 그는 어느 지점을 향해 가고 있을까. 그가 진정 원하는 ‘명예회복의 장’은 어디일까.

자존심이 잔뜩 상해 있을 그가 다시 치열한 프로야구 현장으로 돌아오면 좋겠다. 또 다른 야구인들과 진검승부를 펼치면서, 때로는 팬들의 사랑과 비난을 온몸으로 받아가며 기어코 국보의 격(格)을 우뚝 세우면 좋겠다. 그에게 ‘국보’라는 이름을 붙여준 팬들을 위해서라도, 그가 다시 일어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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