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이글스 제공
한화이글스 제공

 

2010년 7월 21일 대전 구장. 9회초, 한화 이글스가 1:0 리드를 잡은 상황에서 류현진과 이대호가 붙었다.

2아웃, 주자 1,3루. 단타 한 방이면 동점, 장타 한 방이면 역전까지 가능한 상황. 류현진이 과감하게 몸쪽으로 초구 직구를 뿌렸다.

원 스트라이크. 두 번째 투구 역시, 몸쪽으로 파고드는 직구. 투 스트라이크. 순식간에 궁지에 몰린 이대호는 ‘허허, 이 녀석 정말’이라는 표정으로 마운드를 응시한다. 류현진이 던진 세 번째 공은 높게 치솟았고 이대호의 방망이는 힘차게 돌아갔다.

파울. 볼 카운트는 투 스트라이크 노 볼. 류현진의 손에서 뿌려진 마지막 네 번째 공은 다시 한 번 이대호의 몸쪽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삼진. 류현진은 포효했고, 그 날 경기는 한화 이글스의 1:0 완봉승으로 끝났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7년간 활약한 류현진이 뽑아낸 통산 탈삼진은 1238개.

그 많고 많은 삼진 중 한 개에 불과한 2010년 7월 21일 9회초 삼진을 이렇게 상세하게 묘사한 이유가 있다.

이 삼진은, 한국 프로야구에 류현진이 새겨놓은 이미지를 가장 적절하게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괴물 류현진. 두툼한 육체로 타석 구석구석을 과감하게 찔러가며 타자들을 내동댕이 쳤던 야구 ‘천재’.

류현진 인스타그램, LA다저스
류현진 인스타그램, LA다저스

대한민국이 ‘너무’ 좁아 태평양 건너 미국으로 건너간 류현진은 여전히 위력적이었다.

메이저리그 데뷔 첫 해 14승, 두 번째 시즌이었던 2014년에도 14승, ‘코리아 몬스터’는 세계 야구의 중심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충분히 입증하는 듯, 보였다.

어쩌면 류현진의 야구 인생은 ‘너무’ 평탄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류현진의 왼쪽 어깨 관절 와순이 2015년 5월22일 파열됐다. 투수로서 생명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류현진은 수술대에 올랐다.

결국 2015년, 2016년을 사실상 통째로 날려버려야 했다.

긴 시간이 흘러 류현진 스스로가2015년, 2016년을 떠올린다면 ‘보다 성숙했던 시기’로 기억할 수 있겠지만, 당시 탄탄대로를 달리던 류현진에겐 익숙해지기 힘든 낯선 시간들이었다.

국내 프로야구를 완전히 장악하고, 보란 듯이 미국 무대에 데뷔하며 명성을 이어간 그로서는 그에게 밀려온 시간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을 거다.

그런 류현진은, 2017년을 과도기 삼아 2018년에 부활했다.

그것도 제대로. 월드시리즈 2차전 선발이라는, 너무나 화려한 부활이었다.

류현진 / 다저스 트위터
류현진 / 다저스 트위터

 

1점대 평균자책점(경기 수가 적었다는 건 논외로 하자)은 부활의 명백한 증거. 심지어 2019시즌 LA다저스 개막전에 선발 낙점되며 자신이 부활의 정점 어딘가로 향하고 있음을 입증했다.

류현진의 부활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며 ‘완성형’ 부활로 가고 있다.

괴물 류현진이 ‘아픈 괴물’로 전락했을 당시 팬들은 그를 비난했다.

그리 호감형이 아니어도 월등한 실력을 갖춘 선수에게 쏟아지는 찬사는, 실력이 사라지는 순간 순식간에 ‘맹비난’으로 돌변하곤 한다.

사실 괴물 류현진은 신인 때부터 ‘노력형’ 투수라기 보단, ‘천재형’ 투수로 팬들에게 인식되어 있었고, 그가 아프자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치부를 창조해냈다.

그와 관련된 기사가 게시되면 꽤 많은 사람들이 류현진을 맹비난하는 댓글을 다느라 정신없었다.

그러나, 류현진이 그 시기를 통과하고 나니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보다 깊어지고 따뜻해졌다.

선수들은 진화한다. 진화의 필수적인 조건은 ‘부상’과 ‘고난’이다. 팬들도 진화한다.

진화의 필수적인 조건은, ‘(선수들의) 부상’과 ‘(선수들의) 고난’이다. 선수가 부상과 고난 속에 진화하는 모습을 보며 팬들도 진화한다.

‘가짜 팬’에서 ‘진짜 팬’으로, ‘관찰자’에서 ‘동반자’로 진화한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팬들과 자신 사이에 연결된 ‘파이프라인’을 자주 언급하듯, 그것이 자신과 팬들 사이의 ‘신뢰관계’라고 표현하듯, 류현진도 자신과 팬들 사이에 일종의 파이프라인을 갖추게 된 셈이다.

무엇보다 든든한 무기, 팬들과의 굵직한 파이프라인.

류현진 / 다저스 페이스북
류현진 / 다저스 페이스북

 

류현진은 뭐든 덤덤하게 해내는 것처럼 보이는 재주가 있다.

부상과 고난 속에 있었던 류현진이지만 다른 선수들에 비해선 마치 덤덤하게 그 시간을 이겨낸 것처럼 보인다.

그건 류현진 본인의 캐릭터일 수도 있고, 선수들의 삶을 노출하는 미디어가 가진 방식의 한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팬들은 그것조차 류현진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덤덤하게, 미친 실력을 뿜어내는 류현진 특유의 아우라는 고난 속에서도 비슷한 아우라로 발산된다는 사실을…

류현진과 팬들 사이에 생긴 파이프라인은 앞으로 더 견고하게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현역 시절 박찬호와 팬들이 그러했듯, 지금의 추신수와 팬들이 그러하듯, 류현진도 계속해서 자신만의 파이프라인을 키워 가는 중이다.

완성형 부활을 향해 가는 류현진이 도달할 지점엔 무엇이 있을까, 정말 궁금하다.

icon

English(中文·日本語) news is the result of applying Google Translate. <RTK NEWS> is not responsible for the content of English(中文·日本語) news.

저작권자 © 알티케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