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MBK 홈플러스 사태, 왜 노동자 고용논란으로 번졌나
-‘10년 구조조정’의 끝, 회생·M&A 국면에서 터진 불신 -“고용안정 최우선” 약속과 현실 사이의 간극 -회생절차 와중 임금체불 우려
2015년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뒤 10년 동안 전개된 일들은 대형 유통기업에서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사모펀드(PEF)의 차입매수(LBO) 구조, 점포·부동산 매각 중심의 경영 전략, 이어진 기업회생절차와 M&A 추진 과정이 맞물리면서 논란의 초점은 자연스럽게 “누가 손실을 떠안고, 노동자 고용은 어떻게 지켜질 것인가”로 모이고 있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특히 문제 삼는 지점은 MBK와 홈플러스 경영진이 “고용안정을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반복해 온 말과, 지난 10년간 현장에서 체감한 ‘상시 구조조정’의 현실 사이의 간극이다.
◇ MBK 인수 이후 10년, ‘보이지 않는 구조조정’의 일상화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2015년 이후 2024년까지 약 10년 동안 홈플러스의 직·간접 고용 인력은 1만1000여 명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약 2만6000명이던 직접 고용 인원은 2024년 2만 명 수준으로 6400여 명 감소했고, 같은 기간 8000여 명이던 간접 고용 인력도 3000여 명대로 줄어 약 4900명이 사라졌다. 합산하면 1만1300여 개 일자리가 사라진 셈이다.
이 과정에서 청소·경비·매장 관리 등 외주업체 소속 노동자가 포함된 간접 고용 인력 감소 폭은 60%를 넘겼다. 이는 단순한 인력 효율화 수준을 넘어, 조직적인 인력 감축 정책으로 해석될 수 있는 규모라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실제로 MBK 인수 당시 142개였던 점포 수는 현재 123개로 줄었다.
공식적인 대규모 정리해고 발표 없이도, 점포 폐점, 부서 통폐합, 외주 전환, 단시간·비정규 인력 중심 재편 등을 통해 인력이 ‘조용히’ 줄어드는 방식이 반복됐다. 노조는 이를 “저강도 정리해고의 10년”이라고 규정한다. 현장에서는 정규직이 퇴사하면 동일한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보다는 파트타이머나 용역 노동자로 대체하는 일이 관행처럼 이어졌다. 장기 근속자들에게는 희망퇴직과 전환 배치 압박이 가해졌고, 적지 않은 인력이 회사를 떠났다.
경영진은 “대규모 구조조정은 없다”, “인원 감축은 자연감소 수준”이라고 설명해왔지만, 현장의 체감은 달랐다. 인력은 줄어드는 반면 매장 운영과 서비스 수준은 유지해야 했고, 그 부담은 남은 인력에 전가됐다. 장시간 노동, 휴게시간 축소, 감정노동 심화가 동반되면서 노동 강도는 크게 높아졌다.
홈플러스 직원들에 따르면 경쟁사와 비교해 점포당 평균 근무 인력이 15~20명가량 적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직원은 “예전에는 10명이 하던 일을 지금은 2명이 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2020년 도입된 ‘통합부서’ 제도는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평가다. 기존에는 계산, 식품 진열, 물류 배치 등 업무가 직원별로 비교적 명확히 나뉘어 있었으나, 통합 부서 도입 이후 한 사람이 여러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는 구조가 일반화됐다.
임금 수준 역시 논란이다. 노동조합은 홈플러스의 평균 연봉(퇴직급여 포함)이 3880만 원으로, 경쟁사 이마트의 4850만 원보다 약 1000만 원 낮다고 지적한다. 저임금·고강도 노동 환경 속에서 이직은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회사는 매년 신규 채용을 통해 인력을 충원하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1000명을 채용하면 700명이 금방 퇴사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현장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2024년 말 기준 홈플러스의 직·간접 고용 규모는 약 1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 때문에 홈플러스의 회생 여부는 단순히 한 기업의 경영 이슈를 넘어, 10만 명 노동자의 생계와 직결된 사안으로 인식되고 있다. 기업회생절차가 시작되자 노조가 정리해고·외주화 중단, 무기계약직 전환을 통한 고용보장, 임금 정상화,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 등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 LBO·부동산 매각 중심 경영과 ‘땅장사’ 비판
노동자들의 불신은 MBK의 인수 구조와 그 이후 경영전략과도 깊게 연결돼 있다. 2015년 MBK는 홈플러스를 인수하면서 약 7조2000억 원 규모의 인수 금융 구조를 짰고, 이 가운데 5조 원 이상을 홈플러스 자산을 담보로 차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차입매수(LBO) 방식이다.
인수 이후 MBK가 유통 경쟁력 강화보다는 점포와 부동산 자산을 활용한 부채 상환, 재무구조 개선에 무게를 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로 1호점인 대구점을 비롯해 전국 주요 점포 20여 곳이 매각되거나 폐점됐다.
점포가 SLB(매각 후 재임대) 방식으로 팔리면서 홈플러스는 점포 소유주에서 임차인으로 지위가 바뀌었고, 임대료와 금융비용 부담은 늘었다. 재무제표상으로는 부채 감소와 일시적인 현금 유입 효과가 나타났지만, 그 이면에는 점포 폐점에 따른 노동자와 입점 상인, 납품업체의 일자리·거래처 상실이라는 구조조정이 동반됐다. 남은 점포에서도 인력 재배치와 감축, 외주화가 반복됐다.
정치권과 시민단체, 노조가 MBK를 두고 “부동산 투기 목적 인수”, “땅장사”, “먹튀 사모펀드”라고 비판하는 것도 이 같은 경영 방식에서 비롯됐다. 국회 기자회견에서 공개된 내부 문건에는 인수 초기부터 유통 경쟁력 강화보다 점포 부동산 매각과 SLB 구조를 통한 인수 자금 상환 전략이 강조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논란을 키운 것은 이러한 구조조정과 자산매각의 결과로 사모펀드 운용사인 MBK가 거둔 수익 규모다. 보도에 따르면 MBK는 홈플러스 인수를 포함한 3호 블라인드펀드 운용 과정에서 성과보수와 운용보수를 합쳐 1조 원이 넘는 보수를 확보한 것으로 추산된다. 블라인드펀드 내부수익률(IRR)은 28%에 달했으며, 홈플러스 외 다른 투자처를 포함해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반면 홈플러스는 매출 하락, 점포 매각, 유동성 위기, 전자단기사채(ABSTB) 발행 논란을 거쳐 지난 3월 결국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했다. 채권단·협력업체·노동자·개인 투자자들은 손실과 불안을 떠안게 됐지만, 법 구조상 사모펀드 운용사는 제한된 책임만을 지는 구조다.
김병주 MBK 회장이 수천억 원 규모의 사재 출연·지급보증 계획을 밝히고, 김광일 부회장 역시 “고용안정과 회생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국회에서 거듭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1조 원 넘는 보수를 챙긴 뒤에야 뒤늦게 내놓은 액수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홈플러스 사태가 ‘도덕적 해이’ 논란으로 번진 결정적 계기는 채권 발행 과정에서 제기된 ‘사기적 부정거래’ 의혹이다. 금융당국과 검찰에 따르면 MBK와 홈플러스 경영진은 기업회생절차를 준비하면서도 이 사실과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을 투자자에게 충분히 알리지 않은 채 약 6000억 원 규모의 단기 채권을 발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홈플러스는 2월 25일 전자단기사채(ABSTB)를 통해 약 820억 원을 조달했고, 이는 신용등급이 강등된 지 불과 사흘 뒤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MBK와 홈플러스 경영진이 기업회생절차 준비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이를 투자자에게 알리지 않은 행위를 ‘사기적 부정거래’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은 4월 홈플러스 본사와 MBK 사옥, 주요 경영진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및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수사에 나섰다. 이후 김병주 회장을 대상으로 추가 압수수색과 출국금지 조치도 이뤄졌다.
◇ 회생절차 속 드러난 임금체불·고용불안
홈플러스는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돌입 후 공채를 중단하고 수시 채용만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일부 지역에서 희망퇴직도 실시했다.
회생절차가 공식 개시된 지 불과 하루 만인 3월 6일에는 홈플러스가 하도급 협력업체 인건비 지급을 미루게 된 사건이 보도됐다. 전국 홈플러스 물류센터 4곳(안성·함안 상온·신선 등)에서 하도급 계약을 맺고 근무하는 협력사 직원은 정규직만 약 1000명에 달했고, 일용직까지 포함하면 규모는 더 커졌다.
홈플러스가 2월분 도급비 지급을 미루면서 협력사 직원들의 급여 지급이 불가능해졌고, 이는 즉각적인 생계 위협과 일자리 상실 우려로 이어졌다. 협력업체 측 추산에 따르면 홈플러스 물류센터에서 영업 중인 하도급 업체들에 아직 지급되지 않은 도급비는 총 20억 원 규모에 달했다. 한 협력업체 관계자는 “홈플러스 경영진이 책임을 미루는 사이 협력업체와 노동자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용 불안정은 협력사 노동자에만 그치지 않는다. 회생절차 개시 후 수개월이 지나면서 본사 및 점포 직원들 사이에서도 “현재까지 임금 체불은 없지만, 연말이 되면 임금 체불이 시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실제 회생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홈플러스는 매일 발생하는 매출로 납품 대금을 지불하고 있으나, 가용 자금은 급격히 줄고 있다. 주요 거래처의 보증금 선지급 요구, 정산 기간 단축, 상품 구색 축소에 따른 매출 감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자금 사정은 악화됐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혜경 진보당 의원은 “홈플러스는 이미 4대 보험 중 3대 보험이 체납됐고, 전기요금 체납으로 단전 위기까지 겪었다”며 “10월 임금은 간신히 지급됐지만 11월부터는 체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민주노총 마트산업노동조합 홈플러스지부 지도부는 홈플러스 사태 해결에 정부 개입을 촉구하기 위해 이달 8일부터 단식에 돌입하고, “홈플러스 청산은 노동자 해고와 고용불안을 넘어, 해당 점포에 의존하는 지역 중소상공인들의 생존, 농축수산물 납품 농민들의 생계, 지역경제 전반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라고 호소했다.
지도부는 홈플러스가 기업회생 절차에 돌입한 지 258일차가 된 17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258배를 하겠다고 밝혔다.
홈플러스는 2025년 3월 4일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이후 “M&A만이 살길”이라며 새 주인을 찾는 작업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회생 계획 인가 전 M&A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서울회생법원과 매각 주관사 삼일PwC는 홈플러스 회생계획안 제출 기한을 당초 6월 초에서 7월, 9월, 11월로 네 차례 연장했고, 최근에는 12월 말까지 다시 연장했다. 회생 계획 인가 전 M&A를 위해 10월 초부터 10월 31일까지 인수의향서(LOI)를 접수했다.
공개입찰에는 AI 기반 핀테크 기업 하렉스인포텍과 부동산 개발업체 스노마드 두 곳이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 이들 업체들은 오는 26일까지 최종 입찰 제안서 제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대주주 MBK파트너스가 약 2조5000억 원 규모의 지분을 포기하기로 했지만, 인수를 위해서는 여전히 수천억 원 대의 추가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현재 인수전에 참여한 기업들 모두 자체적으로 이 금액을 조달하기란 사실상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두 기업의 인수 참여 목적이 홈플러스의 수조 원대 부동산 실사 기회 확보나 홍보 효과에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 홈플러스 사태 해결 태스크포스(TF)는 지난 5일 서울회생법원 앞 기자회견에서 “두 기업은 유통업 경험이 전무한 부동산‧차입형 인수 구조 기업으로 경영 역량이 부족하다”며 “졸속 인가 시 MBK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홈플러스측은 16일 이 같은 우려에 대해 M&A와 회생절차가 마무리되면 막대한 비용 구조 개선으로 흑자전환이 가능하다고 언론에 밝히며 위기설 진화에 나섰다.
홈플러스 측은 “지난해 대규모 손실은 통상임금 판례에 따른 일회성 퇴직금 600억 원 등 일회성 비용 1100억 원이 반영된 결과”라며 “홈플러스는 지난해 당기순손실 중 상당 부분이 개선되고 영업이익은 단기간 내 흑자전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홈플러스는 M&A가 신주인수방식으로 진행될 경우, 매각 대금이 홈플러스로 유입되며 재무구조가 개선되는 건 물론 연간 5500억 원에 달했던 금융비용이 고금리 차입 구조조정 등으로 약 3300억 원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노조는 정부와 정치권을 상대로 “청산 대신 회생 방안 마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전국에서 잇따라 열고 있다. 야당과 시민단체, 홈플러스 공동대책위는 기자회견을 열어 “홈플러스는 수많은 노동자의 삶의 터전이자 지역사회의 생활 인프라”라며, MBK가 회생 신청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점포 매각·분할 매각·재매각을 통해 ‘먹튀’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MBK 회의실에는 피카소 판화가 여러 점 걸려 있고, 김 부회장은 명품 차량을 여러 대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피카소 판화를 즐기고 명품 차를 타며 인생을 희희낙락할 때 홈플러스 노동자들은 밤잠을 못 자며 불안에 떨었고, 납품업체들은 대금을 받지 못할까 전전긍긍했다”고 비판했다.
김병주 MBK 회장은 “PEF 구조상 자금 조달과 투자 관리 역할만 맡고 있으며, 홈플러스 경영 의사결정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사회적 책임은 다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매체 선데이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김 회장은 미국 뉴욕 맨해튼의 300억 원 대 콘도 보유에 이어, 2020년 미국 최고급 별장지로 꼽히는 뉴욕 사우스햄튼 사가포넥 지역에 또 다른 300억 원대 여름 별장을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동대책위 관계자는 “MBK가 M&A를 하려 하는 것은 진정한 회생이 아닌 투자금 회수를 최우선으로 한 절차일 뿐”이라며 “이는 점포 매각과 사업부 분할매각, 그리고 또다시 사모펀드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홈플러스를 산산조각 내고 손을 터는 명백한 먹튀 시도”라고 밝혔다.
공동대책위는 “홈플러스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은 MBK의 자구 노력이고 직접 투자”라며 “MBK는 고용 안정과 지속 가능한 사업 운영을 위한 실질적인 투자를 우선 단행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