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못지않게 인간관계에도 일정한 거리두기가 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제대로 못하면 코로나에 감염되지만 인간관계의 적절한 거리두기를 못하면 서로 마음의 상처만 받게 된다.

주역에서는 “두 사람이 마음을 함께 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를 절단할 수 있고, 한마음으로 하는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고 했다. 이것은 아무리 힘든 일도 두 사람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해쳐나간다면 극복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인간관계는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일까?

율곡 선생은 격몽요결(擊蒙要訣) 접인장(接人章)에서 사람을 사귀고 대하는 것에 관하여 매우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그는 먼저 사람의 사귐을 신중히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벗을 가리되 반드시 학문을 좋아하고 선을 좋아하며 바르고 엄하며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을 취하여, 그와 더불어 함께 거처하여 겸허한 마음으로 바로 잡아 주고 경계해 줌을 받아들여 나의 결점을 다스릴 것이요, 만일 게으르고 놀기를 좋아하며 아첨을 잘하고 말재주만 뛰어나고 바르지 못한 자일 경우는 사귀어서는 안 된다.”

근묵자흑(近墨者黑),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했다. 착하고 배울만한 친구를 만나면 그를 통해 함께 성장할 수 있지만 나쁜 친구를 만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쁘게 변하게 된다. 또한 사람은 끼리끼리 만나기 때문에 내가 바른 마음으로 수양을 한다면 반드시 그러한 친구들이 내 주변에 모이게 돼있다.

그러므로 율곡 선생은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찾게 되니, 만일 내가 학문에 뜻을 두고 있다면 나는 반드시 학문하는 선비를 찾을 것이요, 학문하는 선비도 또한 반드시 나를 찾을 것이다.”고 했다. 그는 나이에 따라 상대를 대하는 것도 다르다고 했다.

“무릇 사람을 대할 때에는 마땅히 온화하고 공경함에 힘써야 하니, 나보다 나이가 갑절이 많으면 아버지 섬기는 도리로 섬기고, 10년이 많으면 형을 섬기는 도리로 섬기고, 5년이 많으면 또한 약간 공경을 더할 것이니, 가장 해서는 안 될 것은 배운 것을 믿고 스스로 고상한 체하며 기운을 숭상하여 남을 업신여기는 일이다.”

나이가 나보다 많으면 공경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나이 값 못하는 어른들도 있다. 그러나 내가 돈이 많고 더 배웠다고 해서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갑질을 하면 안 된다. 율곡 선생은 내 주변에 있는 선한 자와 악한 자를 잘 가려서 대하는 기술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고을 사람 중에 선한 자는 반드시 모름지기 가까이 지내면서 정을 통하고, 고을 사람 중에 선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역시 나쁜 말로 그의 더러운 행실을 드러내서는 안 되며, 다만 대하기를 범연하게 하여 서로 왕래하지 않아야 한다. 만일 전날에 서로 알고 지내던 자라면 서로 만났을 적에 다만 근황이나 묻고 다른 말을 주고받지 않는다면, 스스로 마땅히 점점 소원해져서 또한 원망하고 노여워함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험담은 돌고 돌아서 결국 나에게로 돌아오게 된다. 악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과감하게 단절하기 보다는 일정한 거리두기를 하면서 서서히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좋다. 또한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던 사람들과 오랜만에 만났을 때는 적당한 안부만 묻고 많은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말이 많으면 반드시 실수를 하게 돼있다.

그런데 가장 힘든 것은 남들이 나를 비방하는 것을 들었을 때이다.

“사람들 중에 나를 헐뜯고 비방하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돌이켜 스스로 살펴야 하니, 만약 나에게 실제로 헐뜯음을 당할 만한 행실이 있었으면 스스로 꾸짖고 안으로 따져서 허물을 고치기를 꺼리지 말 것이요, 만약 나의 잘못이 매우 미미한데 더 보태어 늘렸다면 저 말이 비록 지나치나 나에게 실제로 헐뜯음을 받을 만한 싹과 맥이 있는 것이니, 또한 마땅히 전에 잘못을 제거하여 털끝만큼도 남겨 두지 말 것이요, 만약 나에게 본래 허물이 없는데 거짓말로 날조했다면, 이는 망령된 사람에 지나지 않을 뿐이니, 망령된 사람과 어찌 거짓과 진실을 따질 것이 있겠는가?”

나에 관한 좋지 않은 소문이 돈다면 일일이 대응하고 적극적으로 해명하기 보다는 돌이켜 나에게서 진짜 잘못이 없었는지를 먼저 성찰하고 수신을 해야 한다. 이것이 ‘반구저기(反求諸己)’이다. 인간관계는 여기서 부터가 매우 힘든 단계이다. 남의 비방을 참고 견딘다는 것은 어지간한 내공이 아니고서는 힘들다. 필자도 여기서 자꾸 걸린다. 이 단계를 통과 했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논어에서는 “어진자는 자신이 서고자 하면 남도 서게 하고, 자신이 통달하고자 하면 남도 통달하게 한다.”고 했다.(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이타적인 삶이다. 이것은 곧 성인의 경지이다.

성균관대학교 문화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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