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얼마 전 영화 레미니센스를 봤다. 영화는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도시의 절반이 물에 잠겨 혼란과 절망만이 남겨진 미래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수면이 상승하자 사람들은 전쟁을 벌였고 더 이상 미래에 희망이 없어진 사람들은 해수면 상승 이전의 좋았던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영화 레미니센스(reminiscence)의 제목은 추억, 회상, 회고록을 뜻한다.

참전 군인이자 과학자인 주인공 닉은 과거의 일부를 선택해 오감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기억탱크를 개발해 사업을 하게 되고 사람들은 기억탱크를 이용해 점점 노스탤지어(nostalgia :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에 빠지게 된다.

영화 서두에 ‘과거보다 중독적인 것은 없다’라고 말한 주인공 닉은 과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한다.

“과거는 우리를 쫓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를 알아보지도 않을 것이다. 잊을 수 없는 과거가 있다면 우리가 잡는 것이다. 과거를 쫓아서 우리는 다시 볼 수 있다.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에 대해 그리워했던 것들을 보아라. 이제 난 완전히 당신을 본다. 가장 아름다울 때 해질녘 도시처럼 희미하게 빛나는 당신의 어둠과 빛을”

인간은 어찌 보면 추억을 머금고 사는 동물이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새록새록 떠올리면 레미니센스의 기억탱크처럼 당시의 촉각, 냄새, 소리까지 생생히 마음속에 전달된다.

계절이 바뀔 때, 지난 시절을 다룬 영화를 볼 때, 추억의 노래를 듣고 옛날의 익숙했던 장소를 갈 때 과거의 기억이 강하게 밀려온다. 생각만 해도 기분 좋아진다.

이러한 좋은 기억은 살아야 되는 이유와 삶의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불행하고 안 좋았던 기억 또한 인간의 뇌리에 강하게 남는다. 이러한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몸은 경직되고 우울해진다. 심지어 트라우마로 남아 삶을 송두리째 망가트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거의 기억은 인간에게 독이 될까 약이 될까?

불교에서는 과거에 얽매이는 것은 모두 헛된 망상이자 집착으로 보았다. 금강경에서 부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렇게 청정심이 생기며, 마땅히 색(色)에 머물러 마음이 생기지 않으며, 마땅히 소리·냄새·맛·촉감·법에 머물러 마음이 생기지 않으며,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이 생긴다.”(是故, 須菩提! 諸菩薩摩訶薩, 應如是生淸淨心,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 而生其心!)

선종의 육조(六祖)는 금강경의 바로 이 구절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 ‘머무름이 없이 마음이 생기는 것’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본래 마음은 텅 빈 것이다. 텅 빈 마음은 머무는 바가 없다. 즉 공(空)으로 가면 과거의 좋은 기억이든 아픈 기억이든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음이 한 곳에 계속 머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집착하면 이것은 나에게 독이 된다. 반대로 내 몸에 맞게 쓴다면 분명 약이 될 것이다.

진정으로 망상과 집착을 없앤 깨끗한 마음은 빛과 어둠의 경계가 있는 것도 아니요, 색(色)이나 소리, 냄새, 맛, 촉감, 법에 머물지 않는다.

수행이란 그 어느 것에도 마음이 머물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저 인연이 다가오면 응하고 지나가면 지나간 대로 여여(如如)하게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한다.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 생자필멸(生者必滅)이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간 사람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고, 태어나면 반드시 죽게 된다.

잘 닦여진 마음은 거울처럼 맑아 사물이 다가오면 비추고 사라지면 없어진다.

성균관대학교 문화철학 박사

​​*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수 있습니다.

icon

English(中文·日本語) news is the result of applying Google Translate. <RTK NEWS> is not responsible for the content of English(中文·日本語) news.

저작권자 © 알티케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