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헤겔은 역사를 변증법에 의해 설명하고자 하였다. 현재를 대변하는 (正)에 대한 안티로 나타난 반(反)과 대립하게 되고 그 결과 양자의 타협으로 만들어지는 합(合)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독재정치가 오래되면 그에 대한 저항이 극심해져 이들이 충돌한 결과는 독재정치와 민주정치의 중간적인 성격의 정치가 된다고 하는 식이라고 할까? 그렇게 해서 나타난 중간 정치(정)에(정)에 대한 저항(반)이 또다시 나타나고 그 결과 정치는 보다 민주적인 것(합)으로 귀결되게 되니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완전한 민주정치로 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역사적으로 자주 볼 수 있는 것이라 하겠다. 역사의 발전이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반드시 중간과정을 겪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대립되는 세력들이 격렬한 투쟁을 벌이면서 보다 더 역사적인 필연성을 가진 쪽이 결국 최종 승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의는 승리한다’라는 말은 장기적으로 맞는 말 같다. 영국의 시민혁명의 과정을 예를 들어보아도 대헌장 제정에서 시작된 절대주의 왕권과의 오랜 대립이 이어진 후에 청교도혁명, 명예혁명 등으로 한 발짝 한 발짝 완성으로 향하는 변증법적인 성격을 엿볼 수 있다.

헤겔은 이러한 변증법적 발전을 이끄는 힘을 절대정신이라고 규정하였다. 역사가 토인비 역시 변증법적인 발전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는 대작 ‘역사의 연구’를 통해 문명은 ‘도전과 응전’에 의해 발생한다고 하였다. 도전이라는 정에 대한 반으로서의 응전이 어우러져 문명이라는 합이 이루어진 것이니 헤겔의 변증법과 비슷한 원리라 하겠다. 인류의 사대 문명은 하나같이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났다. 황하 지역이나 나일강 지역은 강의 범람이 심했는데(도전)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응전)이 문명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도전과 응전의 논리에서 중요한 것은 도전이 어느 정도 적당한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전이 미약한 곳 즉 인간이 살기에 너무 편한 곳에서는 문명이 발생하기 어렵다. 중국의 양자강처럼 범람이 없거나 아프리카 밀림같이 의식주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곳이 그렇다. 반면 도전이 너무 강해도 문명은 발생하기 어려울 것이다. 남북극이나 한대지방은 자연환경이 너무나 열악해 문명이 발생하기 어려운 것이 그런 예라 하겠다. 공부를 할 때 너무 어려운 문제나 너무 쉬운 문제를 푸는 것은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안 되는 것과 같다.

역사를 이끄는 원동력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다. 기독교라면 하나님이 역사의 주역이 된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며 인간은 그것을 위한 도구나 배우일 뿐이다. 이슬람교라면 알라신이다. 불교는 윤회를 통해 세상이 돌아가며 인격적인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토인비는 역사를 뒤에서 움직이는 존재를 말하지 않고 있지만 헤겔의 경우는 절대정신이라고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역사를 이끄는 것이 정신적인 존재라는 점이다.

그런데 역사의 원동력이 물질에 있음을 주장한 이가 있으니 그가 마르크스이다. 마르크스는 역사를 이끄는 힘은 정신이 아니라 물질이라고 하였고 따라서 헤겔의 변증법에 대하여 변증법이 거꾸로 서 있다고 비판한다. 즉 절대정신이 아니라 물질이 세계사를 이끌고 있으며 정신이나 가치는 물질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변증법적 유물론이라고 한다.

변증법적 유물론을 역사에 대입하여 만든 것이 이른바 역사적 유물론이다. 인간의 역사는 물질의 발전을 의미하는 생산력의 발전에 의해 전개되는 것으로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서 생산관계와 생산양식이 결정된다. 하지만 생산력이 더욱 발전하게 되면 기존의 생산관계 및 생산양식과 모순이 발생하게 되고 그로 인해 계급투쟁이 전개되어 그것이 생산관계와 생산양식을 바꾸어 새로운 생산양식과 생간 관계에 맞는 새로운 역사적 단계가 실현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역사적 유물론을 바탕으로 역사발전의 5단계 설을 주장했다. 최초의 인류는 사유재산이 없는 원시 공산사회였는데 이는 지극히 낮은 생산력으로 인해 사유재산을 가질 여유가 없는 단계이다. 그러다가 농경이 발전하여 잉여가치가 발생하자 사유재산이 형성되면서 계급이 만들어지는데 최초의 계급은 노예주와 노예였기에 이를 고대 노예제 사회라고 규정했다. 노예제 사회가 발전하면 노예보다 생산성이 높은 농노가 피지배계급으로 발생하게 되고 그래서 영주와 농노의 봉건제 사회가 출현한다. 봉건사회의 주역은 토지 귀족이며 이들은 봉건적 특권을 가지고 농노를 지배하면서 사회의 지배계급으로 존재하게 된다.

봉건사회가 발전하여 생산력이 높아지면 자본주의 사회로 전환되게 된다. 농업생산력의 발전은 잉여가치를 크게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상공업을 발전시킴으로 인해 상공업자들인 부르주아지를 성장시킨다. 부르주아지들은 높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봉건귀족을 타파하는 시민혁명을 일으키고 이를 기반으로 산업혁명을 일으키게 된다. 한편 토지의 부족으로 발생한 프로레타리아(무산계급)는(무산계급)은 산업혁명과 더불어 도시 노동자로 탈바꿈하게 되니 이로서 부르주아 계급에서 발생된 자본가와 프로레타리아 계급에서 비롯된 노동자가 새로운 생산관계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노동자와 자본가에 의한 자본주의라는 생산 관계인 것이다.

자본주의의 특징은 생산수단이 자본이라는 것이다. 자본은 잉여가치를 만들어내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자산이나 단순한 재물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예를 들어 공장 설비는 자본이나 훌륭한 저택은 자본이 아니다. 하지만 그 저택을 남에게 빌려주고 임대료를 받거나 호텔로 개조하여 숙박객에게 이용료를 징수한다면 자본이다. 자본가란 그러한 자본을 소유하여 오롯이 노동만을 판매하는 노동자의 노동을 착취하여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존재인 것이다. 봉건제 사회에서 농노가 생산수단인 토지를 가지고 생산활동을 한 것과는 다르게 노동자는 일체의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노동자와 자본가가 자본과 노동의 교환으로 형성된 생산관계 속에서 공존하게 되는 것이 자본주의라는 생산 관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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