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정의를 상징하는 디케상은 안대로 두 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검을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천칭(저울 종류 중 하나)을 들고 있다.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공평하고 엄정한 정의의 기준을 갖고 참된 정의를 실현하는 힘을 상징한다. 반면 서초동의 정의의 여신상은 완벽히 한국화됐다.

한복차림에 두 눈을 뜨고 오른손에는 천칭을 왼손에는 법전을 들고 있다. 뜬 두 눈으로 법정에 선 자를 명확히 보고 법을 잘 아는 이들 중심의 법전 해석으로 판결을 하겠다는 상징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이제 본래의 디케상과 공통으로 들고 있는 천칭이 남았지만 애당초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가. 완벽한 균형을 이룬 수평을 기대하는 건 자체가 모순이다.

2010년 이후 소셜미디어의 대중화로 인해 플레이밍, 사이버 불링, 캔슬 컬처, 해시태그 운동 등이 시작됐다. 소셜미디어라는 새로운 사회적 공간과 현실 사회는 여전히 팽팽한 대립 구조와 끊임없는 분쟁 상황을 안고 있다.

어딜 가도 화염 가득한 요즘, 잠시 멈춰 이 현상을 함께 고민해볼 책이 출간됐다. 이토 마사아키의 저서〖플레이밍 사회, 캔슬 컬처에서 해시태그 운동까지 그들은 왜 불타오르는가〗이다.

플레이밍이란 ‘활활 타오른다’는 의미로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도 넘은 비방의 글이 빠르게 올라오는 것을 지칭한다.

플레이밍은 시민재판이다. 저자는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신자유주의의 개념을 가져왔다. 사람들은 자유로운 시장 안에서 큰 제재 없이 경쟁을 치러야 했다.

서로를 감시하고 제재했다. 서로를 엄격한 잣대로 살펴보고 고발했다.

개인 스스로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했던 코로나 사태. 일본 국민은 자처해서 규칙을 어긴 자들을 엄벌했다.

타지역에서 온 차량에 흠집을 냈고 늦은 시간에 돌아다니는 사람을 고발했다. 확진자는 피해자인 동시에 예비 가해자가 된다.

‘약자’의 위치 설정의 딜레마로 사람들의 감정은 변화를 겪었다.

영업 제한으로 인해 지원금을 받은 업장은 ‘약자의 특권’을 부여받았다는 식의 비방하는 듯한 논조가 퍼졌고 ‘약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 오히려 약자라며 ‘약자’를 자처하는 반차별 운동이 사회 곳곳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생활보호금 수급자, 재일 교포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일부 어리석은 아르바이트생들이 주방에서 장난을 치거나 냉장고에 들어가는 등의 장난을 쳤고 사진을 찍어 개인 SNS에 올렸다.

아르바이트생들의 신상이 순식간에 퍼지며 퇴학 등의 엄벌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점주들 역시 심각한 손해를 입었다.

이러한 예로 저자는 실질적 죄의 무게보다 비난의 크기에 따라 가중되는 죄의 무게와 형벌의 크기가 변하는 플레이밍의 특징을 설명한다.

끈질긴 악성 댓글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연예인, 가짜뉴스의 진실 여부보다 공격의 소재로서 가치가 있는지만 따지는 현상, 저명인사의 오래전 과거 언동을 밝혀 보이콧하고 지위를 박탈하는 ‘캔슬 컬쳐’ 등. 플레이밍 사회의 다양한 양태를 통해 저자는 플레이밍 사회의 실체에 다가간다.

고작 기호인 줄 알았더니 해시태그의 힘은 강력하다. 전 세계를 휩쓰는 새로운 물결이 되기도 한다.

해시태그로 사람들은 모여 연대하고 나뉘어 적대감을 느낀다. 저자는 해시태그가 필요한 사회적 운동의 프레임을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BlackLivesMatter, #Metoo가 대표적인 예다. 소수의 목소리가 묵살되지 않도록, 피해자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도록, 부정이 어둠에 묻히지 않도록 쓴다면 사회에 필요한 도구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저자는 해시태그 같은 플레이밍 운동이 자기 이익이나 만족 등에 쓰이는 등 헛되게 사용되는 것을 우려한다.

플레이밍은 반드시 이성적 논의가 이루어진 후 진행되어야 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쓰여야 한다. 최초의 수단으로 쓰이면 되돌릴 수 없는 폭력성을 가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단순히 플레이밍 사회를 비판하는 것이 아닌 현상이 일어나는 과정을 분석하고 더 나아가 ‘관용적 자유주의’를 유지하고 함께 나아갈 방법을 모색하고자 했다.

소셜미디어는 새로운 사회적 공간이자 우리에게 주어진 도구다. 안대, 검, 저울, 새로운 규칙과 윤리. 그곳은 이미 공교히 짜놓은 판이 아닌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마지막 터전일지도 모른다.

​​*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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