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법원
서울지방법원 / 알티케이뉴스DB

정리해고에 맞서 장기 파업을 벌인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헬기 파손 등에 대해 국가에 10억 원대 배상금을 줘야 한다고 한 판결이 대법원에서 파기됐다.

집회‧시위가 불법일지라도 경찰의 과잉 진압을 정당화할 수는 없고, 여기에 저항한 행위는 정당방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취지다.

이날 판결 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였다”면서 “노동자 파업을 손배가압류로 보복하는 행위는 사라져야 한다”고 밝혔다.

야당 의원들은 대법원의 쌍용자동차 노동자 손해배상 소송 판결을 계기로 파업 노동자에 대한 손배가압류 남용 방지를 제도화해야 한다며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 3조 개정안)’ 제정을 촉구했고, 국민의힘은 쌍용차 대법원 판결과 무관하며 ‘민주노총을 위한 법’이라고 반박했다.

◇ 파업하면 수십억 소송 고통…노란봉투법 향방은

파업을 한 노조에 남발되는 손해배상소송의 문제점은 오래전부터 지적됐다.

고용노동부가 기업‧국가‧제3자가 노조와 노조 간부, 조합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및 가압류 사건 실태 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쌍용자동차 파업이 벌어진 2009년 이후 지난해 8월까지 약 14년간 노동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 151건에 달한다. 청구금액은 2752억7000만 원에 이른다. 이 중 민주노총 산하 노조를 대상으로 한 소송이 94%(142건)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지난해 8월 대우조선해양이 하청 노조에 47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다시 수면으로 떠 올랐다. 1인당 94억 원으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손배액이 알려지며 노란봉투법 논의가 다시 불붙었다.

노란봉투법은 노조 파업으로 발생한 손실에 대한 사측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지난 2014년 쌍용차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47억 원의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지자 한 시민이 노란 월급봉투에 4만7000원을 담아 보내며 모금운동을 제안한 데서 유래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남기두 기자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남기두 기자 

현행법상 합법 파업은 손배소가 면책되지만 실제로는 폭력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점거 농성을 벌이면 합법으로 인정받기 쉽지 않다. 특히 ‘하청 파업’은 원청 기업을 상대로 교섭도 쟁의도 할 수 없게 되어 있어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에 있지 않은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파업을 하면 불법이다.

소위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개념을 ‘근로 조건에 대해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렇게 되면 원청과 하청 근로자, 지주회사와 자회사 근로자 사이에도 법적 노사 관계가 성립하게 된다. 원청이 하청과 맺은 계약 금액 등이 결과적으로 하청 근로자의 임금, 처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결과적으로 하청이나 자회사 소속 근로자가 원청 혹은 지주사를 상대로 노동 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또 법원이 파업 노동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각 손해의 배상의무자별로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하도록 했다. 지금은 법원이 ‘노조가 회사에 100억 원을 배상하라’는 식으로 판결할 수 있지만 법이 개정되면 소 제기 단계부터 사측이 노조원 개개인의 책임과 귀책 사유를 일일이 산정해 소를 제기해야 하고, 이를 법정에서 입증해야 한다.

경영계뿐 아니라 정부는 주무 부처 장관까지 나서서 노란봉투법 우려를 연신 강조하고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단체교섭의 장기화, 교섭체계의 대혼란, 사법 분쟁 증가 등 노사 관계의 불안정과 현장 혼란이 초래될 것”이라며 법치주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야당 현직 국회의원들이 27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노란봉투법 정기국회 중 처리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남기두 기자 
야당 현직 국회의원들이 27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노란봉투법 정기국회 중 처리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남기두 기자 

노동계는 노란봉투법이 제정돼야 하청 근로자 등 사회적 약자의 노동권이 보호될 수 있다고 맞섰다. 또한 재계의 우려가 “악의적 선동”이며 “과도한 우려”라고 말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통과된 법안이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법이 아니다”라며 “법원의 합법 파업에 대한 판결이 명확한 상황에서 파업권을 남발할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최근 손해배상 청구 사건을 보면 분쟁 다수를 차지하는 대기업 9곳의 사건은 최근으로 올수록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2021년 현대제철은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근로자가 아니므로 단체교섭 상대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246억1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윤지영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정책법률팀장은 “하청·비정규직에 집중되는 최근 손해배상 청구의 흐름을 보면 정부가 말하는 약자 보호를 위해서라도 노란봉투법을 통해 노동 기본권을 보장받고 스스로 교섭할 권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野 “노란봉투법 조속한 의결” 촉구

야권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지 60일이 넘은 노란봉투법의 강행 처리를 추진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본회의 직회부를 통해 해당 법안을 5월 내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 여당은 ‘파업 만능법’, ‘파업 조장법’이 될 것이라며 야당을 향해 입법 철회를 촉구했다.

환노위 간사인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대법원의 쌍용차 판결은 (경찰의) 직무수행 및 재량 범위 한계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며 “노조의 불법 파업에 관한 손배·가압류 문제, 노조법 2, 3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임 의원은 “이번 대법원 판결로 법원에 의해 (기업의) 무리한 손배·가압류 청구가 충분히 걸러지고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며 “이는 노조법 개정이 불필요하다는 반증”이라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위원들은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타 상임위에서 의결하고 법사위에 회부된 법률안에 대해 6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라고 국회법에서 규정하고 있음에도 법사위는 한없이 시간을 끌고 있다”며 “계속 지연될 시 국회법 절차대로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강행한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건의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재계 강한 반발 속에 국민의힘도 불법 파업에 면죄부를 주는 꼴이라고 반발하고 있어 법 통과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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