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희
한민희

성과가 좋아 승진을 앞둔 김 과장 보다 큰 부동산 시세 차익을 내 매사 여유로운 박 대리가 더 부럽다.

어디선가 끊임없이 주식이나 코인 투자로 큰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윙윙 돌아가는 희망이라는 단체줄넘기 줄에 들어가는 것처럼 긴박하게 타이밍을 보며 촉각을 곤두세운다. 영끌빚투, 빚도 자산이고 능력이다.

마통을 뚫고도 모자라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아 돈을 마련했다.

적기에 결사 표를 던졌다.

예상치 못한 우크라이나 - 러시아 전쟁과 미국의 금리 인상 뉴스 등 남의 나라 소식이 뉴스에 연달아 나오더니 파란 비보가 잇달았다.

한 달 벌어 한 달 이자를 내기에도 빠듯하다. 통장에 있는 돈 백만 원과 빚진 백만 원의 무게는 확연히 다르다. 아마 빚져본 사람은 알 거다.

생활비를 대며 원금에 이자를 갚는 게 얼마나 힘든지. 내 손을 떠난 빚의 부메랑이 감당할 수 있는 손으로 돌아올지, 나를 베는 낫이 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 ‘빚’이라는 걸 색다르게 해석한 사람이 있다.

그것도 약 200년 전에 프랑스에서. 〖빚 갚는 기술 - 돈 한 푼 안 들이고 채권자 만족시키기〗는 유럽 사실주의 문학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오노레 드 발자크의 소설이다.

그는 실제 삶 속에서도 많은 빚을 지고 갚기 위해 평생 글 쓰는 노동자로 살았다고 한다. 하루에 40여 잔의 커피를 마시며 자정부터 대낮까지 글을 썼다고 하니 그의 고단한 노력이 눈물겹다.

작가는 자신의 인생을 팔아먹고 사는 사람이라는데, 이 소설에는 실제 경험해 보지 않고는 쓸 수 없는 빚에 대한 고찰과 각종 생존 기술이 소개되어 있다.

소설은 평생 큰 빚을 진 앙페제 남작이라는 삼촌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끌어간다.

그는 빚을 남다른 시각으로 본다. 채권자는 생산자로 채무자는 소비자로. 생산자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있어야 한다는 이 황당한 궤변에 묘하게 설득되는 게 이 소설을 읽는 재미 중 하나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빚을 알고 나를 알면 적어도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앙페제는 빚을 26가지로 나누어 본질을 해석한다.

애당초 빚을 갚을 마음이 없는 앙페제는 채권자를 안심시키거나 만족시킬 방법을 강구했다.

많이 빚진 식당의 주인이 병든 자신에게서 돈을 못 받을까 아픈 그를 치료해 주고 돌봐주면 건강해진 모습을 보여주는 식이다.

이는 채권자에게 ‘언제든 돈을 갚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뢰를 주는 방법이다. 늘 마음씨 좋은 채권자만 있는 게 아니다 보니 그 외의 방법도 여러 가지다.

망루 같은 도로변의 높은 아파트에 거주하며 멀리서 다가오는 채권자를 알아보고 미리 대응 방법을 생각하라는 식이다.

 

주택은 언제든 도망칠 뒷문이 있는 곳을 추천하기도 한다.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뻔뻔하고 미꾸라지 같은 채무자, 앙페제의 모습에 오노레 드 발자크의 모습이 오버랩 되기 때문일까. 이 풍자 소설의 끝 맛은 아릿하고 씁쓸하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아무리 노력해도 변제할 수 없는 자신을 우회적으로 두둔한 것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어떻게 빚을 졌든 간에 일단 빚들은 타인과 연결된 진지한 약속이라, 거기에 존중이 결여되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P. 150)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빚에 허덕이며 쓰지도 않은 글을 보증 삼아 또 빚을 내어 자본의 노예로 살았다는 발자크.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현대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날의 빚은 과연 단순한 허황된 욕망 때문일까. 빛 한 줄기 없는 깜깜한 현실 대신 차라리 불투명한 미래를 택한 선택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한 식구가 모여 살 집을 마련하고 싶어서, 돈 앞에 쪼그라드는 자식의 꿈의 크기가 서러워서, 급한 불 먼저 끄고 나니 당장 먹고 살 돈이 없어서. 우리가 돈을 빌리고 저당 잡힌 건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을 갚기 위해 이렇게 아등바등하는 걸까.

저마다 지니고 있는 다양한 빚의 의미를 이 소설과 함께 되새겨 보기를 바란다.

아! 물론 이 책에는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진짜 빚 갚는 기술은 없다.

그렇지만 독자를 만족시키는 깨달음은 분명하니 이 책에 과감한 투자를 해보시기 바란다

한민희 서평가 

​​*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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