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아 출판편집자
박윤아 출판편집자

책은 종종 술을 부릅니다. 울고, 웃고, 화내고, 무언가를 다짐하게 하는 책들입니다.

그런 책은 힘이 셉니다. 내 마음 상태를 점검하게 하고,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마주하게 하고, 미뤄두었던 계획을 실천하게 합니다.

책을 만드는 편집자이자 책을 읽는 독자로서 진한 감동을 느낀 책들을 소개합니다. 너무 흥겨워서, 또는 속상해서, 또는 용기를 내고 싶어서 시원한 맥주 한잔을 애타게 찾게 만든 책들입니다. 술을 부르는 그 감동을 함께 나누면 좋겠습니다.

애정하는 편집자 동료들에게 종종 책을 선물합니다. 주로 퇴사할 때 그렇습니다. 출판계는 책이 진짜 선물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세계입니다.

내가 나가든 그가 나가든 헤어지는 순간이 오면 나를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제가 아끼는 책을 선물하곤 합니다.

<불편해도 괜찮아>는 그렇게 애정을 담아 선물하는 책 중 한 권입니다.

이 책은 법학자인 김두식 교수가 2010년에 쓴 인권 교양서입니다.

청소년, 성소수자, 장애인, 여성 등 사회에서 자주 목소리를 빼앗기는 소수자의 인권 이야기를 영화와 드라마를 예시로 펼쳐냅니다.

이 책을 보면 평소에 무신경하게 받아들이곤 했던 영화와 드라마에, 그리고 나의 일상에 얼마나 많은 차별 의식이 깔려 있는지 충격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10여 년 전에 출간된 책이기에 지금 시선에서 보면 당연해 보이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만큼 사회적으로 인권 감수성이 높아진 것이겠지요. 그럼에도 문제의식은 유효합니다.

‘역차별’이라는 강력한 프레임이 등장하면서 어린이, 다문화가정, 사회배려대상자 등 소수자 인권이 공정과 평등의 시험대에 오른 지금 인권 감수성을 다시 생각해볼 기회도 줍니다.

 

10여 년 전에도, 지금도 함께 읽고 싶은 책입니다.

한동안 선물로만 전하던 이 책을 최근에 다시 읽었습니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이토록 이성적인 사회과학책에서 저는 뜨거운 감동을 받았습니다. 성소수자 인권을 다룬 문단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1994년부터 1998년까지 방영된 미국 씨트콤 「엘런」의 주인공 엘런 드제너러스는 극중에서 주인공 엘런이 커밍아웃하는 장면을 통해 실제로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그녀는 이 커밍아웃을 위해 NBC방송과 오랜 협상을 했고, 1997년 4월 방영된 ‘강아지 에피쏘드’에서 여행객으로 가득 찬 공항 게이트에서 실수로 마이크를 앞에 두고 “수전…… 나는 게이야”라고 속삭이는 장면을 통해 커밍아웃을 실행합니다.

이 에피소드에는 오프라 윈프리, 데미 무어를 비롯한 명사들뿐만 아니라 엘런 드제너러스의 어머니까지 직접 출연해서 그녀의 커밍아웃을 축하했고,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그녀는 『타임』의 커버를 장식했습니다.”

제가 눈물을 흘린 포인트는 그녀의 커밍아웃을 도운 사람들의 뜨거운 응원이었습니다.

소수자로서 목소리를 내도록 응원해준 주변 사람들의 그 다정함이 너무나 감동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물론 이것은 아무나 누릴 수 없는 이례적인 이벤트이고 시청률 장사라는 자본주의적 계산도 빼고 생각할 수 없는 사건이기에 씁쓸한 뒷맛을 느끼는 분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소수자의 인권을 열렬히 지지하는 마음, 두려운 고백을 축제로 만든 다정함이 참 귀하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안전한 사회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 느꼈습니다.

비난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이기고 자신의 정체성을 밝힌 용기, 또 그런 마음을 지지하고 사랑을 드러낸 용기가 만들어낸 분위기입니다.

요즘 20~30대 사이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을 뜻하는 “피씨하다”라는 말이 칼처럼 쓰이곤 합니다. 모든 일에 올바름의 잣대를 들이대 검열하려 든다는 비판입니다.

무해한 것을 좋아하고 해로운 농담 앞에서 웃지 못하는 저는 그러한 비판 앞에서 자주 위축됩니다.

과도한 배려 또는 문제 제기가 피로감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피씨함을 검열할 때도 있고, 피씨함 또한 하나의 선입견일 수 있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럼에도 피씨함을, 특히 인권 감수성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인권에 있어 엄격함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할 테니까요.

인권은 선택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직장 내 성차별로 목숨을 끊고,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며, ‘일반적인 가정’의 권리를 침해한 다문화가정이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생존이 걸린 문제입니다. 알다시피 그 누군가는 언제든 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다짐합니다. “불편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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