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희
한민희

 

상투 튼 꼬마 신랑도 어른 대접을 해주면서 자연스레 나이 먹은 처녀, 총각은 말로만 노老자를 붙여 불렀다.

개인의 삶의 태도나 성숙함 따위는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지 않으면 진정한 어른이 되지 않았다고 함부로 폄하했다.

이후에 골드 미스와 골드 미스터가 등장했지만 철저히 재력과 능력 위주의 단어라 소외된 이들을 포용하지 못하는 단어에 머물러 아쉽기만 하다.

요즘은 비혼주의라는 말을 더 친숙하게 쓰지만 2021년 기준 1인 가구가 전체의 33.4%로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구의 비율인 29.3%를 앞선 이 시기에도 ‘그들’의 다양한 삶의 형태를 담을 언어는 한없이 빈곤하다.

비혼주의라는 말을 풀어보면 불편한 마음이 든다. 독자적으로 혼자 살기를 선택한 사람들을 칭할 말의 근간이 ‘결혼’이기 때문이다.

아닐 비非 혼인할 혼婚. 강한 가족주의의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중요한 생애 과제로 여겨진다. 오죽하면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구를 ‘정상가족’이라 칭할까.

그런데 정말 이 정도의 표현으로도 충분한 것일까? 한두 음절의 짧은 단어에도 세상의 시선과 편견 그리고 사회적 합의 등이 녹아들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집단이나 분야를 설명하고 논할 언어가 빈약하다는 건 그만큼 우리의 삶이 편향되어 있고 언제든 꺼져버릴 거품처럼 밀도가 낮다는 뜻이다.

〖에이징 솔로〗의 저자 김희경은 우리에게 불필요한 고정관념을 대폭 덜어낸 더없이 반가운 제안을 한다. ‘에이징 솔로’는 혼자 나이 들어가는 상태를 뜻한다.

다양한 신념과 상황 속에서 혼자 사는 이들을 아우르는 용어를 고르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 책에서 말하는 에이징 솔로는 혼인 경험의 유무를 떠나 혼자 살기를 선택해 살고 있는 중년을 뜻한다.

책 속에는 저자를 포함하여 19명의 에이징 솔로 여성들과 나눈 대화가 담겨있다.

가부장제가 역력한 한국 사회에서는 에이징 솔로 남성들의 경험과 차이가 있기 때문에 생애 과제에 큰 차이가 있어 인터뷰이로 섭외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결혼을 하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건 일상 속에서 수많은 편견과 싸우고 무례한 질문을 받는 것과 같다.

국가 발전에 기여하지 않고(비출산) 타인과 조화롭게 살지 못하는 성격을 가졌고 남편이나 자식이 없이 외로운 삶을 살게 될 거라는. 솔로에 대한 왜곡되고 뒤틀린 편견에 그들의 삶은 사실과 관계없이 날조된다.

그러나 저자가 만난 에이징 솔로들은 실제로 외롭지 않았고 대안적 생활 공동체 모델을 만들어 함께 살며 서로를 존중하고 연대한다.

아예 같이 집을 구해 함께 살거나 가까이 살며 불안정한 주거 형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도 한다. 실제로 그들은 고립은커녕 적극적인 시민의식을 갖고 사회에 참여한다.

1인 가구가 점차 확산되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한 가구를 중심으로 법과 제도는 한없이 기울어져 있다.

1인 가구를 위한 정책이라고 해봐야 미혼 청년이나 노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생애 주기로 보면 (앞서 말한 두 세대보다) 더 긴 시간을 버텨야 하는 중년의 시기는 공백이나 마찬가지다.

안정적인 주거 확보는 전 세대를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세대와 다인 가구 중심으로 혜택이 주어진다.

그 외에도 병원에서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만 보호자로 인정하는 관행 때문에 돌봄 현장은 되려 고립을 일으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산적한 문제가 한 둘이 아니다.

나이듦은 정지한 시점이 아니라 앞으로 전진하는 운동성을 지녔기 때문에 우리가 그 방향과 속도에 맞게 같이 움직이며 충분히 논의하고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정부는 여전히 균형 잃은 시각으로 당면한 과제를 외면하고 있다. 에이징 솔로가 아닌 이들은 마치 딴 나라 이야기처럼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활발해야 할 소통의 장은 적막하다. 그런 와중에 저자의 책은 더없이 반가운 마중물과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꿀렁꿀렁 뒤따라 넘치는 많은 생각들을 어느 프레임에도 가두지 않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입체적이고 살아 숨 쉬는 삶이 담긴 언어가 더 필요하다.

한민희 서평가

​​*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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