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아 출판편집자
박윤아 출판편집자

 

실패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실패의 사전적 의미는 ‘일을 잘못하여 뜻한 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그르침’입니다.

목표한 결과를 내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무슨 일이든 시행착오를 피할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실패는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세상에는 바로 이 두려움을 달래주며 실패를 권하는 명언이 많습니다. 가장 고전적인 것은 에디슨이 말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입니다.

시행착오가 모여 결국 성공으로 이끈다는 인사이트입니다.

찰리 채플린도 한마디 했습니다. “언제든 몸을 굽혀 아무것도 줍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확률적으로 따져 봐도 실패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실패 권장’은 오늘날까지 이어집니다. 미국상담협회가 선정한 ‘상담계의 살아 있는 전설’ 존 크럼볼츠 교수는 2022년 출간한 『빠르게 실패하기』라는 책에서 “작게, 빠르게 실패해야 빠르게 성공할 수 있다”라고 동기부여를 합니다.

실패할까 봐 두려워서 작은 시도조차 못 하는 이들을 채찍질, 아니, 응원합니다.

조금 감성적인 버전도 있습니다.

스마트폰 게임을 하다가 진 아이가 ‘FAIL(실패)’이라는 글자를 보고 좋아하기에 옆에 있던 어른이 그게 무슨 뜻인 줄 아느냐고 묻자 “다시 시작하라는 뜻이잖아요”라고 답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이처럼 순수한 시선으로 실패를 받아들이고 새로 시작할 기회로 삼으라는 메시지를 줍니다.

이쯤 되면 온 우주가 실패를 권하는 것 같습니다. 실패의 신이 관대한 표정으로 우리를 굽어살피며 햇살을 내려줄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실은 아닙니다. 작은 실패에도 가혹하게 비판합니다.

경쟁의식 가득한 평가의 시선으로 “그럴 줄 알았다”라고 하거나 나약함을 탓하며 “그것밖에 못 하니?”라고 합니다.

이 가혹한 시선은 내 안에도, 내 밖에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나를 옥죕니다.

비판적이고 평가적인 이 시선에 익숙해지면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 너무 큰 용기가 필요해집니다. 역설적으로 실패의 가치를 드높이는 명언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이유일 겁니다.

 

물리학자인 김상욱 교수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에서 우리 몸이 생명을 유지하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원자로 이뤄져 있고, 모든 물체는 원자 대 원자의 물리법칙에 따라 반응합니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술을 마시면 알코올이 세포에 신호를 보내 알코올 분해 효소를 만드는 식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이러한 화학 반응에는 반드시 재료가 필요한데 우리 몸은, 그러니까 우리의 원자는 대체 그 재료를 언제 어떻게 조달하는 걸까요?

“이것은 생명의 화학 과정에서 언제나 나오는 질문이다. 답은 허탈하다. 그냥 우연으로 거기에 있는 거다.

염기에는 네 종류가 있다. DNA 중합 효소가 아데닌의 상보적 염기인 티민을 구하는 방법은 그것이 우연히 다가오는 수밖에 없다. 이게 말이 되냐고?

사실 DNA 중합 효소에는 네 종류의 염기만이 아니라 수많은 분자가 쉴 새 없이 날아와 부딪힌다. (중략) 망치가 필요해서 망치를 찾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 항상 망치가 날아다니는 셈이다.

"결국 생명의 화학 반응들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세포 안에는 재료가 될 물질이 충분히 존재해야 한다.” 

화학 반응이 일어날 때까지, 정확한 그 위치에 닿을 때까지 재료가 될 분자들이 쉴 새 없이 날아와 부딪힐 뿐이라는 겁니다. 단번에 성공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도대체 몇 번의 실패를 거쳐야 하는지 가늠도 못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온 우주에서 천문학적인 횟수로 실패하고 있는 거죠.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며 이렇게 살아 있는 건 쉴 새 없는 시도 덕분입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계산도, 전략도 없습니다. 우주의 모든 것을 이루는 원자인데 그렇습니다.

과학의 세계에서도 실패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많은 재료와 시도만이 성공 확률을 높입니다.

“실수할 자유가 없는 자유란 가치가 없다.” 마하트마 간디의 말입니다. 다양한 시도로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선, 살아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선 바로 이 가치 있는 자유가 반드시 필요해 보입니다.

하지만 혼자만의 다짐만으로는 얻을 수 없습니다. 가혹한 시선은 나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저는 타인의 실패에 관대해지는 것부터 해보려 합니다. 그렇게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 나의 실패에도 관대해지지 않을까요?

박윤아 출판편집자

​​*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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