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우크라이나 남부의 카호우카 댐이 붕괴됐다. 이로 인해 그나마 안정됐던 곡물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고, 심지어는 유럽 최대의 원자력발전소인 자포리자 원전의 냉각수 공급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댐의 붕괴인지 파괴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분명한 건 도미노처럼 벌어지는 재앙이 전쟁의 여파라는 사실이다.

코믹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1982년에서 1994년까지 연재한 동명의 시리즈를 단행본으로 엮은 작품이다. 동명의 영화는 코믹스를 축약·각색해 만들었다. 모두 하야오의 작품의 기본 기조가 되는 여성 서사, 성장, 자연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반전(反戰)을 주제로 한다.

주인공 나우시카는 다른 인물들에 비해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다른 인물들은 인간에게 치명적인 균류로 가득한 숲인 부해와 그곳에 사는 거대 곤충들을 적대시하지만, 나우시카는 부해를 자유롭게 들락거리며 곤충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해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곤충들과 소통하기도 한다.

부해와 곤충을 전쟁에 이용하려는 위정자들은 나우시카를 전장으로 내몬다. 나우시카는 그곳에서 허약한 명분 아래 서로를 죽고 죽이는 참상을 마주한다.

나우시카는 묻는다. “뭘 위한 전쟁이란 말인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속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음모, 자연파괴는 위정자 집단에 의한 일부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벌어진다. 거신병을 이용해 인류 문명의 멸망을 불러온 ‘불의 7일’,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으로 부해의 ‘대해일’을 불러와 스스로 몰락의 길을 겪은 인간들은 아직도 잘못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서 일곱 권에 걸친 방대한 스토리를 일일이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길고 긴 이야기 속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피폐해져가는 국토와 위정자들의 선동에 의해 증오에 휩싸인 불행한 민중이 전쟁 속에서 어떻게 희생되는지 자세히 그려낸다.

코믹스의 주요 사건은 ‘토르메키아’와 ‘도르크’의 전쟁이며, 이는 ‘도르크’의 성소에 보관된 지식과 기술을 ‘토르메키아’의 왕이 탐하면서 벌어졌다.

이를 막기 위해 ‘도르크’의 황제는 인공적으로 강력한 균류를 생성해 부해를 확장시킨다. 부해의 확장은 곧 인간이 살아갈 땅의 상실이다. 자신이 돌봐야 하는 백성의 사정은 봐주지 않고, 황제는 권력을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두 권력자의 공방은 순수한 탐욕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그렇게 전쟁이 일어난다. 그 과정에서 여자와 어린이, 노인들은 포로가 되거나 무방비하게 죽음에 노출되고, 남자들은 전쟁터의 장기말이 되어 쓰러져 간다.

하야오의 초기작에는 유독 평화와 생태에 대한 관점이 크게 투영돼있다. ‘나우시카’ 외에도 〈원령공주〉[もののけ姫]를 들 수 있다. 그는 일본의 침략 전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이러한 생각을 바탕에 두고 작품에 전쟁의 무가치를 담았다고 할 수 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는 특이한 힘을 지닌 나우시카가 평화와 번영의 신화에 힘입어 전쟁을 종결로 이끌어 간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특수한 능력도, 평화에 대한 광범위한 믿음이나 신화도 없다. 위정자들의 욕망에 충실한 전쟁 선동을 가려낼 지혜만 있을 뿐이다.

지난 5월 31일 새벽에는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와 관련해 서울시 일대에 오발령이 내려졌다.

우크라이나 이주민은 이웃들을 깨워 지하철역으로 대피하려 했고, 어떤 이는 부모님과 반려견을 데리고 강남에서 수원까지 대피하기도 했다.

이렇듯 북한 관련 경보는 우리에게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권에게 평화의 노력을 바라기는 힘들어 보인다. 정부·여당의 외교안보정책은 강경노선을 택했고, 연일 북한을 때리거나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기에 여념이 없다. 심지어 한미정상회담을 전후해서 핵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정치권에서 북한을 비난한다고 해서 당장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강대국의 각축장이 되어온 한반도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평화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야 한다. 전쟁을 해본 적 없이, 군대라는 강력한 무력 집단의 효용을 모르는 자들이 거대한 폭력을 휘두를 일은 없어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우리에게 평화는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평화는 기적처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고 어느 정치인이 말했듯, 우리는 평화를 위한 노력을 차곡차곡 쌓아야 할 때이다. 그 길은 오직 대화와 이해를 기초할 때 가능하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긴장과 대결 양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지금, 그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 70여 년 전에 겪었던 비극을 다시 되풀이 할 수 없지 않은가, 그 비극의 씨앗이 심어지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윤인혁 서평가

​​*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icon

English(中文·日本語) news is the result of applying Google Translate. <RTK NEWS> is not responsible for the content of English(中文·日本語) news.

저작권자 © 알티케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