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희 서평가
한민희 서평가

 

얼마 전 일본 규슈 지방에 다녀왔다.

조용한 동네를 거닐다 한 공중전화 부스가 눈에 들어왔다.

보통의 공중전화 부스보다 5~6배 넓은 공간에 전화기는 낮은 테이블에 놓여있었다.

유리문의 1/2을 차지하는 밑 부분은 뚫려있었고 출입구 쪽에는 턱이 없었다. 유리의 전면엔 장애인 픽토그램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몇 걸음 더 걸어간 곳에 편의점이 있었다. 출입문 앞에는 계단이 3개 있었는데 넓지 않은 계단의 중앙엔 경사로가 설치돼 있었다. ]

경사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경사로가 중앙에 위치하는 게 좋다.

휠체어, 유아차 또는 짐수레 등이 옆에서 들어갈 때 두 번은 방향을 틀어서 진입해야 하는 불편함은 물론이고 오고 가는 사람들과 즉각적인 시야 확보가 안돼서 부딪힐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작지만 당연한 배려가 눈에 들어온 건 아이를 낳고 유아차를 끌어본 경험 때문이다. 유아차를 끄는 것도 이렇게 불편한데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은 어떨까, 희미하게나마 헤아려보고 싶었다.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의 저자 백정연은 장애인 남편과 함께 살며 장애인 동료와 함께 일하는 사회적 기업가로 현재 '소소한소통'을 운영하고 있다.

소소한소통은 자연재난, 암 조기 진단과 예방법, 근로계약서 등 일상적이고 필수적인 정보를 이해하기 쉬운 정보로 가공해 제공한다.

이는 발달장애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 학습장애 어린이, 어르신처럼 말과 글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편한 정보이다.

저자는 <이해하기 쉬운 장례식장 예절>이라는 소책자를 발행한 적이 있다.

실제로 이를 보고 저자가 시아버지상을 당했을 때 발달장애인 동료는 사회인으로서, 마음을 나누는 다정한 관계로서 함께 했다고 한다.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알지 못해서였던 건 아닐까. 장애인들에게도 당연한 삶의 모습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 건 비장애인인 것만 같다.

 

장애인들이 진작에 마땅히 살아냈어야 했을 삶을 살 수 있도록 저자는 끊임없이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우리의 곁으로 이끈다.

장애인 중 약 10퍼센트만이 선천적 장애인이고 90퍼센트 이상은 사고나 질병 등으로 장애인이 된 중도 장애인이라고 한다.

현재 2022년 기준 우리나라 등록 장애인 수는 265만 2,860명으로 국민 전체의 5%에 해당한다. 상당히 많은 비율임에도 우리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이들이 적은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에서 이동권 집회가 이어졌었다. 그들의 사정에 공감하면서도 누군가는 이들이 1분 1초가 급한 출근길을 방해한다며 비난했다.

서울시를 더 이상 믿고 기다릴 수 없어 시위라는 방식을 택한 간절함이 서린 배경을 비장애인의 시선으로만 바라보고 이해한 건 아닐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장애인인 남편과 함께 살며 경험한 몇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그저 서로를 사랑하기에 함께 부부의 연을 맺었을 뿐인데 착하다, 천사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경험, 그리고 담담한 고백까지.

"축복이죠. 비장애인의 삶과 장애인의 삶을 다 살아 보는 건데, 이보다 더 큰 행운이 어디 있을까요."

서른이 되어 갑작스레 찾아온 장애인의 삶을 살게 된 남편과의 대화에서 듣게 된 대답이다. 저자는 남편에게 비장애인으로 살던 때가 그립지 않은지 등을 물은 마음의 이면을 깨닫고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걸을 수 없는 사람이 웨어러블 로봇을 입고 걷는 영상을 본 기억이 있다. 과학의 발전으로 신체적 장애마저 극복 가능한 영역으로 만드는 희망적인 기술로 기억한다.

저자는 이것마저 '비장애인의 관점'이라며 설명한다.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 장애인들은 다시 일어나 걷는 삶이 아닌 휠체어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삶을 바란다고 한다.

저자는 '기술이 아니라 기술 만드는 사람의 변화가 더 필요하다'라며 기술의 발전이 이끄는 삶의 방향이 그저 최첨단 기술만 가득한 빈 껍데기는 아닌지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적극적인 제도 개선의 중요성을 말하지 않는다. 물론 미비한 제도가 보완되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근본적인 장애인을 나의 이웃으로, 동료로 보는 시선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함께 걸어가면 길이 된다. 우리의 다양한 발자국이 모여 걸어가는 그 길 끝엔 분명 존중과 배려가 가득한 세상이 있을 것만 같다.

2호선 합정역 화장실에서 반가운 그림 문자들은 본 적이 있다.

'장애인 화장실'이라 부르는 곳이 '다목적 화장실'로 변해있었다. 장애인의 픽토그램 옆에는 임산부, 노인, 유아, 유아 동반을 나타내는 픽토그램들도 함께 하고 있었다.

배려라는 이유로 덩그러니 만들어놓은 장소에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서,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만나는 평범한 배려를 받는 존대로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져서 반가웠다.

예전에 아이와 함께 길을 걷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본 적이 있다.

아이는 순수하고 서투른 언어로 '엄마, 저 사람은 왜 저래?'라고 물었다. 순간 얼굴이 붉어져 아이를 이끌며 채근했다.

이 책을 읽고 다짐했다.

장애인이라는 말에 그 어떤 편견이나 불필요한 감정을 담지 말 것, 다시 한번 아이가 묻는다면 솔직하고 담백하게 설명할 것.

"장애가 있어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거야. 우리가 두 다리로 걸어가듯이, 저분도 앞으로 나아가는 거야.“

한민희 서평가

​​*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icon

English(中文·日本語) news is the result of applying Google Translate. <RTK NEWS> is not responsible for the content of English(中文·日本語) news.

저작권자 © 알티케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