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아 출판편집자
박윤아 출판편집자

 

합정역 10번 출구에는 2개의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합정역 안으로 내려가는 것과 밖으로 올라가는 것. 그런데 지난 5월 합정역 밖으로 나가는, 그러니까 올라가는 방향의 에스컬레이터가 고장 났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합정역 10번 출구를 빠져나가야만 하는 나는 어느 날 에스컬레이터가 멈춰 있는 것을 보고 상심했다. 이른 더위에 헉헉거리며 드넓은 합정역 역사를 가로질러 온 참이었다.

자동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맡기고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그럴 수 없었다. 아쉬워하며 터덜터덜 걸어 올라갔다.

그런데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에스컬레이터는 계속 멈춰 있었다. 작동을 멈춘 지 셋째 날이 되었을 때 에스컬레이터 입구에 ‘수리 예정 중’이라는 종잇장이 붙었다.

때 이른 폭염주의보에 날이 계속 더워지고 있었다. 매일 아침 인파를 헤치고 합정역 역사를 가로지르며 에스컬레이터 앞의 코너를 돌 때마다 기도했다. 오늘은 제발 에스컬레이터가 작동하기를!

그렇게 아침 기도를 한 지 한 달이 되어가던 6월 19일 월요일 아침, 어김없이 멈춰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마주했다.

스마트폰을 꺼내 서울교통공사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곧장 ‘고객의 소리’를 클릭하고 한 달 가까이 고장 난 채 방치된 공공 시설물 이용에 불편을 호소하는 글을 남겼다.

그리고 6월 21일, 서울교통공사로부터 답을 받았다.

“문의해 주신 6호선 합정역 10번 출입구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는 건물(메세나폴리스) 측에서 설치 및 관리하고 있는 에스컬레이터로 우리 공사에서는 운영, 관리하는 승강기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기업이 관리하는 에스컬레이터라서 서울교통공사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내용이었다.

시민이 이용하는 공공 서비스인데 “우리 공사에서 운영 및 관리하고 있지 않은 관계로 명확히 답변”할 수 없다는 답이 당황스러웠다.

“6월 26일 보수 작업을 계획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며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해 주시면 감사드리겠”다고 덧붙인 말에 일단 26일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다음 날인 27일에도, 28일에도, 29일에도, 그리고 30일에도, 합정역 10번 출구에서 밖으로 나가는 에스컬레이터는 고장 난 채 멈춰 있었다.

문유석 전 판사의 『최소한의 선의』를 읽으며 헌법과 인간 존엄성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는데 이 ‘사건’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올랐다.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시한 게 헌법이라면, 공공 인프라의 관리 책임을 사적 기업에 양도한 서울교통공사의 처사는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걸까?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시민의 편의를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얼마나 적극적으로 불편 사항을 처리할 수 있을까?

마음에 안 드는 물건은 안 사면 되는 것처럼, 마음에 안 드는 인프라라면 이용 안 하면 되는 걸까?

이 사건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문제일까? 고작 이 정도의 불편에 국가의 역할과 존엄성을 운운하며 항의하는 건 배부른 소리일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인간다운 생활인가, 라는 기준점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이 기준점이 올라가는 것은 배부른 소리가 아니라 사회의 발전이다.

아니, 배부른 소리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배부른 소리가 인간사회를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결핍이 변화를 낳는다. 모두가 현재에 만족하고 머무른다면 인간은 아직도 동굴 안에서 나뭇가지 모아 불 피우며 살고 있었을 것이다.”(『최소한의 선의』)

편리하고 안전한 출근길을 위해 6월 30일, 서울교통공사에 두 번째 민원 글을 남겼다.

시민이 이용하는 시설물의 관리를 기업에게 맡기고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는 항의였다. 과연 어떤 답변을 받게 될까.

기대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박윤아 출판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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