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예술인들 “이선균 방지법 제정” 요구
-경찰 “이선균 수사보고서 원본째 유출”
-“언론의 무분별 보도 자성해야” 목소리

 사진제공=문화예술인 연대회의

마약 투약 혐의로 수사를 받다가 숨진 배우 고(故) 이선균 씨가 사망한 지 오는 24일이면 60일째 되는 날이다. 故 이선균 사태를 계기로 혐의가 있더라도 수사단계에서부터 피의자의 인권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영화계 선후배 동료들은 배우 이선균이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다가 숨진 것과 관련해 수사 정보 노출이 적법했는지 조사해 공개할 것과 피의자의 인권 보호를 위한 ‘이선균 방지법’의 제정을 요구했다.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에 대한 자성도 촉구했다.

◇ 경찰, 수사 정보 누출 ‘후폭풍’

故 이선균 씨의 수사 정보가 유출됐다는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은 내부 수사보고서가 원본 그대로 유출된 것으로 보고 유출 경로를 추적 중이다.

현재 경찰은 인천경찰청 내부에서 특정 언론사 등으로 수사 정보가 유출됐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으며 아직 입건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은 지난 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이 사건은 시작부터 이선균씨 소환 조사 때까지 수사 정보가 지속적으로 유출돼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우 본부장은 “수사보고서 원본이 찍혀 어떤 경로를 통해 유출됐는지, 누군가 고의 혹은 과실로 유출했는지, 시점 등을 특정하기 위해 압수수색을 거쳐 관련자들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한 연예 전문 매체는 이 씨가 숨진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 28일 경찰 내부 문건인 ‘연예인·유흥업소 종사자 등 마약류 투약 사건 수사진행보고’ 사진과 함께 문건 내용을 발췌해 보도한 바 있다.

이선균 씨의 마약 투약 혐의는 지난해 10월 19일 언론보도로 처음 알려졌다. 이씨는 이보다 앞선 10월 14일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돼 형사 입건됐으며, 세 차례에 걸쳐 경찰 소환 조사를 받았다. 이씨는 세 번째 소환 조사를 받은 뒤 지난해 12월 27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김희중 인천경찰청장은 이 씨가 숨진 이후 기자간담회를 열어 “경찰의 공개 출석 요구나 수사 기밀 유출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윤희근 경찰청장도 같은 날 “경찰 수사가 잘못돼 그런 결과가 나왔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우 본부장은 “공식적으로 인천경찰청에서 발표한 적이 없는 소환 날짜가 유출돼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출된 수사 정보가 이 씨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았다는 비판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피의자들을 여러 차례 포토라인에 세운 점도 논란을 빚었다. 이 씨의 변호인은 세 번째 소환은 비공개로 해줄 것을 경찰에 요청했으나 묵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수사가 여론의 압박에 등 떠밀려 늑장 대응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영화감독 봉준호를 비롯한 문화예술인들이 지난달 성명을 발표하고 수사 정보 유출 경위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자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는 것이다.

경찰청이 김웅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선균 씨 마약 투약 혐의 수사 기록을 외부에 유출했다는 비판을 받는 인천경찰청은 지난해 A등급(상위 40% 이상)을 받아 ‘제식구 감싸기’라는 의구심이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인권위원회와 인권연대가 지난 2일 국회의원회관 제5간담회의실에서 ‘이선균 재발 방지, 검·경 수사 중 피조사자 자살 원인 및 대책 긴급토론회’를 진행했다. / 알티케이뉴스 남기현 기자
더불어민주당 인권위원회와 인권연대가 지난 2일 국회의원회관 제5간담회의실에서 ‘이선균 재발 방지, 검·경 수사 중 피조사자 자살 원인 및 대책 긴급토론회’를 진행했다. / 알티케이뉴스 남기현 기자

 

◇ 수사기관 인권침해 방지 ‘이선균 방지법’ 제정 시작

이선균 배우 사건과 같은 비극을 방지하기 위한 일명 ‘이선균 방지법’ 제정 절차가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 인권위원장을 맡고 있는 주철현 의원은 17일 수사기관의 인권침해를 방지하고 무죄추정 원칙과 국민의 알권리가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수사 관련 공무원의 인권침해 방지법(이하 이선균 방지법)’을 국회 법제실에 입안 의뢰했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도 같은 취지의 법을 만들 계획이다.

지난 1월12일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고 이선균의 사망 사건 관련해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성명을 읽고 있다. 사진제공=문화예술인 연대회의
지난 1월12일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고 이선균의 사망 사건 관련해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성명을 읽고 있다. 사진제공=문화예술인 연대회의

 

앞서 봉준호 감독과 가수 윤종신 씨, 배우 김의성 씨 등 문화예술인들이 모인 문화예술인연대회의는 지난 1월 12일 성명을 내고 이선균 배우 사망과 같은 비극적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이선균 방지법’ 제정을 요구한 바 있다.

30개 단체, 2831명이 참여한 연대회의는 기자회견을 통해 △수사정보 유출 의혹 진상규명 △고인에 대한 선정적 보도 삭제 △이선균 방지법 제정 등을 촉구했다.

연대회의는 경찰청에는 ‘수사당국 관계자들의 수사 과정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 KBS에는 ‘보도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기사 삭제’, 국회의장에게는 ‘문화예술인의 인권보호를 위한 현행 법령 제정 및 개정’ 등을 요구했다.

주철현 의원이 의뢰한 ‘이선균 방지법’은 현재 대통령령과 하위 훈령으로만 규정돼 있는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의 공보와 인권보호 관련 제도의 핵심 내용을 법률로 상향하고 처벌 규정을 담아 강제성을 확보하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하고 있다.

핵심은 사실상 사문화된 형법 제126조의 ‘피의사실공표죄’와 별개로 피의사실과 관련 없더라도 피의자와 관련자의 프라이버시 등 인권침해 정보는 공소제기 전후를 막론하고 공표를 포함해 일체의 유출 행위를 금지하도록 했다.

실제 현행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은 예외적인 요건을 제외하곤, 피의사실 공표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씨를 비롯해 유명연예인들에게 적용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또한, 수사 중 가혹행위와 자백 강요뿐만 아니라 궁박한 상태의 피의자(또는 피고인)에게 변호인 선임권·접견교통권을 침해한 상태에서 자백 또는 허위 진술을 받는 행위를 금지하고, 피의자 등을 공개 소환할 경우 지방경찰청장이나 검사장의 사전 승인을 문서로 받도록 의무화해 절차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했다.

김희수 변호사가 지난 2일 국회의원회관 제5간담회의실에서 ‘이선균 재발 방지, 검·경 수사 중 피조사자 자살 원인 및 대책 긴급토론회’에 참석했다. / 알티케이뉴스  남기현 기자
김희수 변호사가 지난 2일 국회의원회관 제5간담회의실에서 ‘이선균 재발 방지, 검·경 수사 중 피조사자 자살 원인 및 대책 긴급토론회’에 참석했다. / 알티케이뉴스 남기현 기자

 

이 밖에 수사 정보나 인권침해 정보가 유출될 경우 즉시 담당 수사진에 대한 직무감찰을 의무화하고 이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의무를 명시함과 동시에 입증책임을 국가로 전환하는 내용, 수사 정보나 인권침해 정보가 수사기관으로부터 유출된 것이 확인되면 수사진 즉시 교체와 고발을 의무화하는 내용도 담길 것으로 보인다.

주철현 의원은 “‘이선균 방지법’을 반드시 제정해 인권을 무시하는 권위주의 시대 수사 관행과 선정적 언론보도로 또 다른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가수 윤종신은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내사 단계의 수사 과정이 ‘국민의 알권리’라는 명목으로 언론보도가 이뤄진 점을 짚으며 언론과 미디어의 행태를 규탄했다.

윤종신은 “고인에 대한 내사 단계의 수사 보도가 과연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공익적 목적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특히 혐의사실과 동떨어진 사적 대화에 관한 고인의 음성을 보도에 포함한 KBS는 공영방송의 명예를 걸고 오로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보도였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라고 물은 뒤 “KBS를 포함한 모든 언론 및 미디어는 보도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기사 내용을 조속히 삭제하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지난 1월12일 이선균 사망 사건과 관련해 경찰 수사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성명서를 읽고 있 김의성, 윤종신, 이원태 감독.(왼쪽부터) 사진제공=문화예술인 연대회의
지난 1월12일 이선균 사망 사건과 관련해 경찰 수사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성명서를 읽고 있 김의성, 윤종신, 이원태 감독.(왼쪽부터) 사진제공=문화예술인 연대회의

 

이어 “대중문화예술인이 대중의 인기에 기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용해 악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소스를 흘리거나 충분한 취재나 확인 절차 없이 이슈화에만 급급한 일부 유튜버를 포함한 황색언론들, 이른바 ‘사이버 렉카’의 병폐에 대해 우리는 언제까지 침묵해야 하는가”라며 “정녕 자정의 방법은 없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19일 경기신문의 ‘톱스타 L씨, 마약 혐의로 내사 중’ 단독 보도 이후 11월24일 KBS는 이선균 씨와 유흥업소 직원의 통화 내용을 공개하면서 사안은 유명연예인의 사생활 문제로 변질됐다. 고인이 사망한 날 TV조선은 리포트에서 유족 반대에도 고인의 유서를 공개했다가 논란이 되자 삭제했다.

지난해 12월26일 JTBC는 ‘이선균 “빨대 이용해 코로 흡입했지만, 수면제로 알았다” 진술’이란 단독 보도에서 재차 이선균씨의 마약 투약 주장을 전했고 같은 날 유튜버 가로세로연구소는 유흥업소 실장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KBS는 보도에 대한 비판에 대해 ‘최대한 절제된 내용만 기사로 다뤘고 고인의 사망과는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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