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가 불발되자 정치권에서 부산 민심을 달래기 위해 ‘산업은행 부산 이전 성공’을 천명하고 나섰다. 부산이 2030 엑스포 유치전에서 결선 투표에도 이르지 못하고 참패하면서 내년 총선 표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어서다.

국민의힘은 엑스포가 불발된 다음날인 지난 30일 부산에서 현안 회의를 열고 부산의 3대 현안인 ‘가덕도 신공항 건설 사업’, ‘북항 재개발’, ‘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을 국정과제로 추진하겠다고 재차 약속했다.

KDB산업은행 본점을 부산으로 이전하는 내용의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안은 국회 정무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핵심적인 원인은 여야 대립이지만 지역 균형발전 자체에 대한 실효성 논란과 산은 구성원 합의 실패가 더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진영간 첨예한 대립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내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는 당의 의지에 따라 개정안 향방이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 부산 민심 달랠 카드로 ‘산업은행 부산 이전’ 검토

부산 엑스포 유치가 실패하면서 여권이 이를 만회하기 위한 특단의 카드로 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을 검토 중이다.

구체적으로 엑스포 유치가 불발된 북항재개발 지역 일대에 금융 관련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확충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지난해 5월 산업은행 이전에 더해 수출입은행의 부산 이전을 검토하라고 인수위에 지시한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 / 알티케이뉴스 DB
윤석열 대통령 / 알티케이뉴스 DB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은 지역 균형발전의 일환으로 현 정부가 국정과제에 포함한 주요 과제 중 하나다.

국토교통부는 앞서 한국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이전하는 공공기관으로 관보에 지정·고시했다. 산업은행은 지난 7월 부산 이전 계획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모든 기능과 조직을 부산으로 보내는 내용의 결과를 금융위원회에 보고했다.

금융위와 산업은행은 최소 인력 100여 명만 남기고 모든 조직·기능을 부산으로 이전하는 안을 택했다.

강석훈 한국산업은행 회장이 지난 24일 국회 본관에서 열린 ‘2023년도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알티케이뉴스 남기현 기자
강석훈 한국산업은행 회장이 지난 24일 국회 본관에서 열린 ‘2023년도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알티케이뉴스 남기현 기자

다만 산업은행의 이전을 뒷받침하는 한국산업은행법(산은법)이 야당의 반대로 아직도 국회에 계류 중인 상태다. 여야 견해차가 큰 만큼, 양당 원내지도부 차원이 결단이 필요한 실정이다.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위해서는 이전 공공기관 지정 고시, 지방이전계획 승인 등의 행정절차와 산은법 제4조 제1항의 본점 소재지 조항 개정이 필요하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대한민국 인구·자본·기업의 수도권 집중화로 수도권과 비수도권간의 생산·고용·기업·인구 등의 격차는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며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대한민국이 재도약하려면 서울과 부산 2개의 성장 축이 실현돼야 하고 한국산업은행 부산 이전이 그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 본점 부산이전을 위한 컨설팅 용역을 두고도 논란이 일었다. 산업은행은 부산 이전 행정 절차를 준비하던 지난 2월부터 ‘산업은행 정책금융 역량 강화를 위한 컨설팅’을 시작했다. 용역사는 삼일PwC다.

보고서에는 산업은행 전체 기능과 조직을 부산으로 이전하는 ‘지역성장 중심형 방식’과 서울에 기능을 병행 배치하는 ‘금융수요 중심형 방식’을 담고 있다. 산업은행은 본점 부산 이전이 윤석열 대통령의 국가 균형발전 정책에서 핵심인 만큼 소수 부서를 제외하고 나머지 기능을 모두 부산으로 이전하는 지역성장 중심형 방식을 채택하기로 했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21일 오후 한국산업은행지부는 한국산업은행 본점 지방이전 지지투쟁 집회를 진행했다. / 알티케이뉴스 남기두 기자
21일 오후 한국산업은행지부는 한국산업은행 본점 지방이전 지지투쟁 집회를 진행했다. / 알티케이뉴스 남기두 기자

산업은행 노조는 지난 9월 국민의힘 지도부의 부산 방문 당시 김기현 대표의 발언을 토대로 컨설팅 보고서 작성에 외압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방문 당시 김 대표는 부산 국제금융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올해 초 윤 대통령의 강력한 지시가 있었다.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고 용역결과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도 부산 이전을 무조건 A안으로 추진하라는 지시도 했다”고 말했다.

부산시에 따르면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에 따른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지역에 생기는 경제 유발 효과는 약 4조 원에 달한다. 부울경 생산유발효과가 2조4076억 원, 부가가치 유발 효과가 1조5118억 원이다. 취업 유발 효과는 3만6863명으로 추정된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지역간 인구이동과 지역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수도권의 인구 집중은 심각한 상황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50.6%)은 국토에서 불과 11.8%를 차지하는 수도권에 모여 살고 있으며, 한국의 수도권 인구 비중은 2020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6개국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적으로도 특히 수도권 한 지역에만 인구가 밀집된 이례적 상황이라는 것이다. 올해 서울의 인구는 부산의 2.85배에 달한다.

부산시 관계자는 “부산은 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은 물론 추가로 2차 공공기관 이전도 추진 중”이라며 “현재 부산에 있는 한국거래소나 한국예탁결제원,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같은 다양한 금융기관들과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특히 금융기관들이 부산으로 옮기게 되면 부울경 지역의 해운업 발전과 관련한 전·후방 산업 지원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산은 노조 강력 반발 “심각한 비효율 초래”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국산업은행지부(이하 산은 노조)는 정부와 정치권이 오직 정치 논리에만 사로잡혀 산업은행의 역할과 기능에 심각한 비효율을 초래하는 부산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산은 노조측은 “부산 이전이 과연 지역균형발전 효과가 있는지 타당성 검증부터 먼저 해보자고 제안했지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방식의 컨설팅을 추진하는 등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산은 노조는 지난 7월 31일 한국재무학회에 의뢰해 받은 컨설팅 보고서를 바탕으로 산은 부산 이전시 10년간 약 7조 원의 누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가 경제적 파급효과 손실은 약 15조 원 결과가 도출됐다.

5월 13일 오후 6시 한국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금융노조 한국산업은행지부가 ‘한국산업은행 지방이전 저지투쟁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 남기두 기자 
5월 13일 오후 6시 한국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금융노조 한국산업은행지부가 ‘한국산업은행 지방이전 저지투쟁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 남기두 기자 

노조는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핵심 정책 수단으로 지금까지 총 150여개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해 혁신도시를 조성했으나 예상보다 경제적 효과가 미미하다고 주장했다.

산은 노조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0~2013년 수도권 실질 소득은 13% 증가한 반면 혁신도시는 11.3% 늘어나는데 그쳤다. 2013~2016년에는 해당 증가율이 수도권은 16%, 혁신도시는 12.7%를 기록했다. 지방 이전 혁신도시의 경제성장률은 오히려 수도권 대비 격차가 1.7%포인트에서 3.3%포인트로 확대됐다.

시장형 정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이 거래하는 기업들의 70%는 수도권에 위치해 업무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산은이 부산으로 가게 되면 협력 기관들은 업무 협의를 위해 출장을 다니느라 시간과 비용을 허비할 수 있다.

산은은 주로 산업금융채권(산금채) 발행을 통해 국내외 금융시장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데 부산 이전시 거래 비용 상승 및 대외 신용도 하락 등 자금 조달 여건 악화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아울러 본점을 부산으로 이전하면 약 700~800명이 근무지를 이동해야 하는데 서울에서 근무하려는 인재들이 떠나갈 가능성이 큰 실정이다. 실제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이 가시화되자 직원들의 ‘탈(脫) 산은’ 행보가 잇따르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부산 이전이 공론화 된 지난해를 기점으로 퇴사자 수가 급증했다. 산은에 재직하는 회계사는 연간 퇴사 인원이 통상 1~2명에 그쳤는데, 부산 이전 논란 뒤 2022년에 11명이 한꺼번에 줄퇴사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4명의 회계사가 퇴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청 산은 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알티케이뉴스에 “산업은행은 시장형 정책금융기관으로 글로벌 금융기관과 경쟁을 하는 플레이어다. 국내 상장사 72.2%, 산은 거래기업 본사의 69.2%가 수도권 및 해외에 위치하고 있는데 부산 이전시 심각한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 수석부위원장은 “금융은 맨파워가 중요함에도 본점 부산 이전 이슈만으로도 퇴사자 수가 2.5배 급증했다. 10년 이상 과‧차장급의 퇴사로 기관 역량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산은 노조는 보수‧진보 정부 모두 서울을 홍콩‧싱가포르에 버금가는 동북아 금융허브로, 글로벌 금융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으나, 산은은 총선을 앞두고 포퓰리즘 정책으로 졸속 이전을 추진해 정책 혼선을 야기하고 있다며 이전 타당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수도권 인구 쏠림 현상을 완화하려면 기업이 먼저 내려가야 하고, 금융기관만 내려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며 “저출산‧고령화 문제와 교육, 의료, 교통 인프라 등 정책이 종합적으로 추진돼야 하는데 앞뒤 순서가 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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