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산업재해 감축” 천명
-연이은 산재 사망과 신제품 ‘모카번’ 공급 중단
-SPC, 총체적 위기 속 ‘관리 부재’ 심판대에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SPC 본사에서 평택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 spc 사진 제공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SPC 본사에서 평택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 spc 사진 제공

 

SPC삼립이 안전사고에 이어 품질 문제까지 겹치며 구조 개혁 필요성에 직면했다.

지난 5월 시화공장에서 발생한 근로자 사망사고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 프리미엄 브랜드 제품의 품질 불량으로 신제품 공급을 무기한 중단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SPC삼립 프리미엄 브랜드 ‘미각제빵소’가 내놓은 ‘오리지널 모카번(85g)’이 출시 직후 품질 문제로 전격 공급 중단에 들어갔다. 이 제품은 1등급 밀가루, 천일염, 베트남산 커피원두 등을 원재료로 한 프리미엄 제품이다.

안전 관리 실패에 이어 공급망 관리마저 허점을 드러내면서, 기업 전반의 시스템이 총체적 부실에 빠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 안전과 품질은 같은 문제의 앞·뒷면

SPC 사고 발생 기계. 시흥소방서 제공
SPC 사고 발생 기계. 시흥소방서 제공

 

일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SPC삼립은 8월 15일부로 편의점과 일부 유통 채널에서 ‘미각제빵소 오리지널 모카번’ 공급을 전격 중단했다. 신제품임에도 ‘상단 모카 토핑 부스러짐·비닐 묻어남’ 등 품질 편차가 확인되자, SPC삼립은 자체 품질 기준 미충족으로 생산사에 재생산을 요구했다.

문제가 된 오리지널 모카번은 2008년부터 SPC삼립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맡아 온 울산의 도투락식품이 납품한 제품이다. 20년 가까이 거래해 온 협력사에서 품질 문제가 발생했지만 SPC삼립은 이를 걸러내지 못했다. OEM‧하청 구조에 기대면서 검증 시스템을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한 채 방관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유통 매장 혼선도 커졌다. 실제 편의점 점주들은 가격표 폐기, 고객 응대 등 현장 부담을 호소했다. 서울의 한 편의점주는 “이미 구매한 제품은 괜찮냐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사안은 실적 부진과도 직결된다. 2025년 2분기 SPC삼립 영업이익은 88억 원으로 전년 대비 67.5% 감소했고, 매출은 8,235억 원으로 3% 줄었다. 상반기 영업이익은 248억 원(–44%), 매출은 1조 6,384억 원(–2.5%)에 그쳤다. 안전 리스크가 생산·출하를 멈추게 하고, 품질 리스크가 리콜·재생산·재고 손실로 이어지면서 실적에 직격탄이 됐다.

◇ 이재명 대통령 질책 이후…노동시간·안전체계 ‘개편안’은?

이재명 대통령  / 알티케이뉴스 DB
이재명 대통령  / 알티케이뉴스 DB

 

5월 경기 시흥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끼임 사망사고가 발생하자, 이재명 대통령은 7월 25일 현장을 찾아 “돈과 비용 때문에 안전과 생명을 희생하는 구조는 바꿔야 한다”고 직격했다.

SPC그룹에서는 최근 3년간 8건의 산업재해가 발생해 6명이 사망하고 6명이 다쳤다. 특히 2022년 10월 SPL 평택공장, 2023년 8월 성남 샤니공장, 2025년 5월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기계 끼임 사망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구조적 안전 관리 부실이 심각하게 제기됐다. 이 대통령은 시화공장을 직접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주재했고, 이는 현직 대통령이 산업재해 현장을 찾아 경영진을 질책한 이례적 행보로 평가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5일 경기 시흥시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열린 '산업재해 근절 현장 노사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SNS. 재판매 및 DB금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5일 경기 시흥시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열린 '산업재해 근절 현장 노사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SNS. 재판매 및 DB금지)

 

현장 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은 허영인 SPC그룹 회장과 김범수 SPC삼립 대표 등 경영진을 향해 강도 높은 질책을 쏟아냈다.

이 대통령은 “일주일에 나흘을 밤 7시부터 새벽 7시까지 12시간씩 일한다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라며 장시간 근무 관행을 지적하고, “똑같은 현장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사고가 반복되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어 “돈과 비용 때문에 안전과 생명을 희생하는 구조는 바꿔야 한다”며 “한 달 월급 300만 원 받는 노동자라고 해서 그 목숨값이 300만 원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도 SPC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SPC 같은 경우 끼임 사고가 계속 반복된다”며 “불완전한 인간과 고장 날 수 있는 기계를 시스템으로 보완해야 하는데, 인간의 불완전한 행동만 원인으로 보면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SPC에서 중대재해가 반복되는 문제를 보면 지배구조부터 다층적 요소가 작동한다”며 “그런 차원에서 SPC는 발본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질책 이틀 뒤인 7월 27일, SPC그룹은 긴급 대책을 발표했다. 계열사 대표이사 협의체 ‘SPC 커미티’를 소집해 생산직 근로자의 8시간 초과 야근 전면 폐지를 결정했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을 제외하고 야간 생산을 최대한 줄이며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고, 주간 근무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피로 누적과 사고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인력 확충, 생산 품목·생산량 조정, 라인 재편 등 전반적 생산 구조를 개편하고 10월 1일부터 전면 시행하기로 했다. 단순 스케줄 조정이 아니라 품목·물류·설비 배치를 포함한 공정 전반 재설계를 예고한 셈이다. 다만 ‘야간 생산이 불가피한 일부 품목’은 예외로 뒀다.

SPC그룹 사옥. /제공=SPC그룹
SPC그룹 사옥. /제공=SPC그룹

 

SPC그룹은 2027년까지 624억 원의 안전 투자를 추가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중 안전·자동화 등 시설투자에 543억 원, 안전 문화 정착에 81억 원을 배정한다는 계획이다. 핵심 방향은 생산성과 납기 중심 운영체계를 노동자 생명·건강 중심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그러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2022년 SPL 평택공장 사고 당시에도 1,000억 원 투자와 안전경영위원회 출범을 약속했지만, 이후에도 사고는 반복됐다. 실제로 2022년 10월부터 지난 5월까지 969억 원이 안전설비 확충과 위험 작업 자동화 등에 투입됐으나 참사는 이어졌다.

고용노동부는 강도 높은 수사·처벌 절차에 착수했다. 8월 22일 김범수 SPC삼립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소환 조사했다. 사고 발생 95일 만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최고경영자에 대한 첫 소환 조사로 기록됐다.

지난 22일 국회 제2간담회실에서 열린 ‘SPC 샤니 성남공장 노동자 끼임 사망사고 법적 검토 발표’ 간담회가 진행되었다. / 알티케이뉴스 남기두 기자
지난 22일 국회 제2간담회실에서 열린 ‘SPC 샤니 성남공장 노동자 끼임 사망사고 법적 검토 발표’ 간담회가 진행되었다. / 알티케이뉴스 남기두 기자

 

지난 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더불어민주당 산업재해예방TF 주최로 열린 ‘SPC 안전‧보건체계 개편 보고회’에서는 반복되는 산재 사망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고용노동부가 제출한 ‘SPC 감독경과 보고’에 따르면, 5월 22일부터 6월 12일까지 실시한 산업안전보건 종합 감독 결과 법 위반 65건이 적발됐다. 17개 조항은 형사입건, 15개 조항에는 총 2억 3,0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됐다.

제대로 안전 조치를 했다면 막을 있었던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기계 회전 부위 덮개나 리프트 인터로크(물체가 감지됐을 때 작동을 멈추는 장치)가 설치되지 않은 사례가 대표적이며, 작업자가 기계의 회전부를 건너갈 때 실족을 막을 수 있는 난간이 없거나, 작업자들이 이동하는 통로 폭이 30cm에 불과한 구간도 확인돼 설비에 끼일 위험이 컸던 것으로 조사됐다.

SPC그룹은 사고 때마다 ‘안전 경영’을 약속했지만, 근로감독에서 드러난 법 위반은 오히려 증가했다. 2023년 3월 9개였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조항은 같은 해 8월 26개, 올해 5월 32개로 늘었다.

허영인(왼쪽) SPC그룹 회장과 이해욱 DL그룹 회장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산업재해 관련 청문회'에 출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허영인(왼쪽) SPC그룹 회장과 이해욱 DL그룹 회장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산업재해 관련 청문회'에 출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특히 허영인 SPC 회장은 2023년 국회 청문회에서 “안전교육을 더 많이 해 작업자를 보호하겠다”고 약속했지만 SPC삼립에서 안전교육 미실시로 부과된 과태료만 1억6400만 원에 이른다.

정부는 2025년을 ‘산업재해 근절의 원년’으로 선언하고, 반복 중대재해 기업에 대한 전방위 제재를 예고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는 강한 표현을 사용하며 형사처벌과 시장 불이익을 결합한 제재 구조로 정책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16일 김영훈 고용부 장관 후보자가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알티케이뉴스 남기두 기자
16일 김영훈 고용부 장관 후보자가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알티케이뉴스 남기두 기자

 

김영훈 장관은 “중대재해 재발 상황을 감안하면 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이 바탕이 되는 근본적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10월 1일부터는 산업안전감독에서 안전의무 위반이 적발될 경우 시정지시 없이 즉시 사법조치하겠다”며 강력한 처벌 의지를 밝혔다. 그는 “막을 수 있었던 사고로 인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노동자가 없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국회는 SPC에 △실제 사고 위험도 감소 여부 △안전‧보건 관리자 확보 △투자 이행 투명성 △근로자 휴식 보장 등을 요구했다. 일부 의원은 “기계 노후화에 따른 교체를 안전투자로 둔갑시킨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SPC그룹 관계자는 “생산 현장의 장시간 야간 근로에 대한 지적과 우려를 무겁게 받아들여 근무 형태를 비롯한 생산 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혁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도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이 되는 일터를 만들 수 있도록 적극적인 개선과 투자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산업안전 전문가는  “야간 근로 8시간 상한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라며 “가동 중 정비 금지, 인터록·가드의 중첩 등 안전 문화가 뿌리내려야 사고를 멈출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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