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80시간 노동 의혹 제기…2022~2025년 9월까지 산재 승인 63건, SPC보다 많아
-유족 “21시간 근무한 날도…근로 시간 자료 제출 거부·은폐 시도 있었다”
-쪼개기 계약·CCTV 감시·매일 시말서…“청년 갈아넣는 구조”

권영국 정의당 대표를 비롯한 정의당 관계자들이 30일 서울 종로구 런던베이글뮤지엄 매장 앞에서 런던베이글뮤지엄 청년 노동자 과로사 규탄 및 책임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영국 정의당 대표를 비롯한 정의당 관계자들이 30일 서울 종로구 런던베이글뮤지엄 매장 앞에서 런던베이글뮤지엄 청년 노동자 과로사 규탄 및 책임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7월 유명 베이커리 브랜드 ‘런던베이글뮤지엄’(법인명 LBM, 이하 런베뮤) 인천점에서 근무하던 26세 직원 정모 씨가 회사 숙소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겉으로는 ‘핫플’, ‘MZ 브랜드 성공신화’로 포장된 유명 프랜차이즈의 이면에서, 한 청년의 죽음이 뒤늦게 알려지며 한국 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나 브랜드를 만든 창업자 료(본명 이효정) 대표의 경영 방식에 대한 책임론이 커지고 있음에도, 당사자는 사건 이후 공식적 입장을 내지 않은 채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LBM 고문을 맡고 있는 료 창업주는 직원 사망 사건이 공론화된 뒤 본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그동안 그는 방송, 강연, 유튜브 등에 출연해 런던베이글뮤지엄의 성장 스토리를 ‘성공 사례’로 소개해 왔다.

회사 브랜드 교육 과정에서 그는 “매뉴얼을 넘어서는 서비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성취감을 얻는 근무 자세”를 반복 강조하며, 매장 관리자들에게 개별 직원 평가와 ‘강도 높은 서비스 노동’을 당연한 것으로 요구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은 2021년 서울 안국동 1호점 오픈 이후 MZ세대를 대표하는 ‘핫플레이스’로 부상했다. 2025년에는 사모펀드 JKL파트너스에 2000억 원대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매각되기도 했다. 현재 전국에 7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 ‘63건 산재 승인’…SPC보다 많은 수치

유명 베이커리 브랜드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일하던 20대 직원이 주 80시간에 가까운 근무 끝에 숨졌다는 의혹이 제기돼 고용노동부가 기획감독에 나섰다.고용노동부는 지난 29일부터 런던베이글뮤지엄 인천점과 본사 엘비엠(LBM)에 대한 근로감독에 착수했다. 노동부는 이번 감독에서 고인의 근로시간뿐 아니라 전 직원의 근무·휴가·임금체불 여부를 점검하고, 위반 사항이 드러나면 다른 지점까지 감독을 확대할 계획이다.사진은 30일 서울 종로구 런던베이글뮤지엄 매장 모습.
유명 베이커리 브랜드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일하던 20대 직원이 주 80시간에 가까운 근무 끝에 숨졌다는 의혹이 제기돼 고용노동부가 기획감독에 나섰다.고용노동부는 지난 29일부터 런던베이글뮤지엄 인천점과 본사 엘비엠(LBM)에 대한 근로감독에 착수했다. 노동부는 이번 감독에서 고인의 근로시간뿐 아니라 전 직원의 근무·휴가·임금체불 여부를 점검하고, 위반 사항이 드러나면 다른 지점까지 감독을 확대할 계획이다.사진은 30일 서울 종로구 런던베이글뮤지엄 매장 모습.

 

유족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정 씨는 사망 직전 최소 주 80시간에 가까운 고강도 노동을 했고, 사망 일주일 전에는 21시간 연속 근무를 한 날도 있었다. 지난 3개월간도 주 평균 60시간을 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장시간·고강도 노동이 사망의 직접적 원인일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그럼에도 회사는 산재 신청 과정에서 근로시간 자료 제출을 회피했고, 실제 직원·가족·노동계 관계자들의 증언에는 “사측이 과로사 의혹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자료 제출을 고의적으로 지연하거나 은폐하려 했다”는 구체적 발언도 담겼다.

사건 이후 국회 환경노동 관련 국정감사에서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근로복지공단 자료를 공개하면서 충격은 더욱 커졌다. 자료에 따르면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산재 승인을 받은 건수는 2022년 1건, 2023년 12건, 2024년 29건, 2025년 9월까지 21건 등 총 63건이며, 이 가운데 100%가 승인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최근 중대재해 사망 사고가 발생한 SPC삼립의 전년도 산재 승인 건수(11건)와 비교해도 약 6배에 이르는 규모다.

커피·베이커리 업종 특성상 단순 경상 사고가 일정 부분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승인 건수가 해마다 가파르게 늘고 전체가 모두 승인된 점을 고려하면 산재 인정 요건을 충족하는 사고가 구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근로복지공단 자료에 따르면 올해에만 근골격계 질환으로 인한 산재 승인 사례가 확인됐고, 지난해와 올해 각각 1건씩 출퇴근 재해도 발생했다. 이는 장시간 서서 일해야 하는 매장·주방 업무 특성에 더해 인력 부족, 과도한 업무량이 상시화돼 있음을 시사한다.

현장 제보자들은 “매장은 항상 인력난 상태였다”, “휴식은 사치 취급을 받았다”, “제때 식사도 하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고 입을 모았다. 정 씨가 사망 직전 연인에게 남겼다는 “밥도 못 먹었어. 너무 정신이 없어”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는 당시 근무 환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일하는시민연구소에 따르면 런던베이글뮤지엄을 운영하는 LBM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3월 기준 750명으로, 이 가운데 정규직은 3.2%(14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96.8%(736명)는 기간제 또는 시간제 비정규직이었다. 실제 온라인 구직 플랫폼에 올라온 채용 공고를 보면 대부분 기간제 계약직 형태였다.

퇴사율도 높은 편이다. 일하는시민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LBM 전체 사업장의 고용보험 취득자 수는 2022년 227명에서 2024년 728명으로 3배 이상 늘었지만, 같은 기간 고용보험 상실자는 114명에서 505명으로 약 5배 증가했다. 2024년 한 해 신규 취득자는 607명, 상실자는 554명으로, 퇴사자가 신규 입사자의 91.2%에 달했다.

◇ ‘성공 신화’ 뒤편의 노동 통제…“청년을 갈아넣는 구조”

30일 서울 종로구 런던베이글뮤지엄 매장 앞에서 권영국 정의당 대표가 런던베이글뮤지엄 청년 노동자 과로사 규탄 및 책임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가운데, 런던베이글뮤지엄 매장 안에서 청년 노동자들이 업무를 하고 있다.
30일 서울 종로구 런던베이글뮤지엄 매장 앞에서 권영국 정의당 대표가 런던베이글뮤지엄 청년 노동자 과로사 규탄 및 책임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가운데, 런던베이글뮤지엄 매장 안에서 청년 노동자들이 업무를 하고 있다.

 

브랜드의 화려한 성장 뒤에는 △잦은 시말서 작성 △CCTV 기반 상시 감시 △1개월·3개월 단위의 쪼개기 계약 △출퇴근 기록 미반영 △근로시간 축소 기록 △인력 충원 미비 속 초장시간 노동 등이 만연했다는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전·현직 직원들은 “매장 관리자들의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가 상상 이상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정 씨는 사망 닷새 전 하루 21시간을 일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망 전날인 7월 15일에는 오전 7시 41분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 3시를 넘겨 퇴근했고, 이후 몇 시간 뒤인 오전 8시경 다시 출근해 자정까지 일했다. 당시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상황에서 택배 수백 개를 뜯어 정리하고, 차단봉 수십 개를 옮기는 등 고강도 육체노동을 반복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사망 전 3개월간 정 씨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60시간을 넘어섰다. 이는 대한민국 법정 노동시간인 주 52시간(기본 40시간+연장 12시간)을 크게 초과하는 수준이다.

◇ 국감·정치권·노동계로 번진 파장

런던베이글뮤지엄 20대 직원 사망 사건은 단순한 개별 산업재해를 넘어, 한국 청년 노동 현실의 민낯을 드러낸 사례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사건 이후 논란은 국회와 노동계 전반으로 확산됐다.

민주노총은 성명을 내고 “런베뮤는 청년 노동자의 생명을 담보로 한 폭리 경영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또 “브랜드 충성도와 감성 마케팅 뒤에 숨겨져 있던 구조적 착취가 드러났다”며 인력 부족, 휴식 부재, 감시·통제 중심의 운영 방식, 브랜드 이미지에 결부된 서비스의 과도한 강조 등이 사망 사건의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30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도 이 사건은 핵심 쟁점으로 다뤄졌다.

지난 15일 안호영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이 국정감사에서 질의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 남기두 기자
지난 15일 안호영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이 국정감사에서 질의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 남기두 기자

안호영 위원장은 “끊이지 않는 산업 현장 사고 앞에서 노동부는 여전히 사후 대응에만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고, 김태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인은 최근 주 평균 60시간 이상 일했으며 이는 과로사 기준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진보당 정혜경 의원은 1개월 단위 쪼개기 계약, CCTV 기반 감시, 매일 시말서 작성, 가족마저 불안해할 정도의 장시간 노동 실태를 지적하며 “이러한 구조가 청년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비판했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
정혜경 진보당 의원

정 의원은 “한 달짜리 계약에 CCTV 감시와 매일 시말서. 계약 연장을 위해 노동자 스스로 갈려 나가는 구조”라며 “이 구조 속에서 노동자들은 계약 연장을 위해 퇴근 시간조차 스스로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정 씨 역시 입사 후 14개월 동안 강남·수원·인천 등 4개 지점을 전전하며 근로계약서를 세 차례 갱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노동부는 10월 29일 런베뮤 본사와 인천점을 대상으로 긴급 기획감독(특별조사)에 착수했다. 이후 법 위반 정황이 포착되자 11월 4일 감독 범위를 LBM이 운영하는 전 계열사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런던베이글뮤지엄, 카페 레이어드, 하이웨스트, 아티스트베이커리 등 18개 매장 전체가 전면 근로감독 대상이 됐다.

SNS상에서는 런베뮤 불매 움직임이 퍼지고 있으며, 일부 매장 앞에는 영어·일본어로 된 추모 현수막까지 게시됐다.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이 사건을 알리기 위한 취지라는 설명이다.

사건이 공론화된 뒤 런베뮤 측은 뒤늦게 공식 입장을 내놨다. 회사는 10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주 80시간 근무와 시말서 강요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잇따른 폭로와 통계 수치로 드러난 산재 규모 등을 고려할 때 브랜드 신뢰 회복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강관구 LBM 대표는 입장문에서 “영업시간과 지점별 하루 생산량이 정해져 있는 카페 매장 특성상 장시간 연장근로가 계속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2025년 1월부터 10월까지 전 지점의 주 평균 실근로시간은 43.5시간”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평균값만으로는 과로사의 인과관계를 판단할 수 없고, 사망 직전의 고강도 연속 근무 여부가 더 핵심적인 판단 기준”이라고 반박한다.

산재 승인 63건과 관련해 회사는 “업무상 발생한 모든 재해를 사고의 경중과 관계없이 산재로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말서 낭독 논란에 대해서도 “본사 지시로 사과문을 낭독하거나 시말서를 읽게 한 사례는 없다”며 “아침 조회는 운영 공지사항을 공유하는 정기 브리핑 시간이며, 문제된 영상은 직원이 자발적으로 동료에게 사과한 장면”이라고 해명했다.

권영국 정의당 대표
권영국 정의당 대표

 

정의당은 정부를 향해 △런베뮤를 포함한 동종 업계 전반에 대한 근로감독 실시 △사업장 쪼개기를 비롯한 편법 운영 단속 △포괄임금제 폐지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실질적 근로기준법 적용 등을 요구했다.

16일 김영훈 고용부 장관 후보자가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알티케이뉴스 남기두 기자
16일 김영훈 고용부 장관 후보자가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알티케이뉴스 남기두 기자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법 위반이 확인되면 철저히 책임을 묻겠다”며 “위법·탈법적 사업 운영 방식이 기업혁신이나 경영혁신의 이름으로 포장되는 일이 없도록 현장의 잘못된 관행을 발본색원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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