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해 피해 키워” 1심 뒤집혀
-“정부, 중재자 아닌 ‘배상 주체’”
-피해자 측 “뜻깊은 판결” 환영

환경시민단체와 피해자 단체가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원앞삼거리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 세퓨 제품피해 국가책임 민사소송 2심 판결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알티케이뉴스 남기현 기자
환경시민단체와 피해자 단체가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원앞삼거리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 세퓨 제품피해 국가책임 민사소송 2심 판결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알티케이뉴스 남기현 기자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국가도 배상 책임이 있다며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8년 동안 이어진 항소심 끝에 나온 결론이다. 피해자와 가족 13명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지 10년 만이다. 제조업체뿐 아니라 정부에도 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서울고등법원 민사 9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등 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3명에게 300만 원에서 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지난 6일 판결했다.

재판부는 “화학물질 유해성 심사‧공표 단계에서 공무원 과실이 있는지를 면밀히 본 결과 재량권 행사가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앞서 지난 2015년 1심 볍원은 “가습기살균제에 유해물질이 사용된 걸 국가가 미리 알았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달까지 ‘가습기살균제’로 1847명 숨져

환경시민단체와 피해자 단체가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원앞삼거리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 세퓨 제품피해 국가책임 민사소송 2심 판결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알티케이뉴스 남기현 기자
환경시민단체와 피해자 단체가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원앞삼거리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 세퓨 제품피해 국가책임 민사소송 2심 판결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알티케이뉴스 남기현 기자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정부에 접수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7901명이며 이중 1847명이 사망했다.

피해자들은 2008~2011년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이 주원료인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뒤 원인 불명의 폐질환으로 치료를 받았다. 이에 피해자와 유족 등 13명은 2014년 가습기살균제를 제조 또는 납품한 세퓨, 옥시레킷벤키저, 한빛화학, 롯데쇼핑, 용마산업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 중 옥시와 한빛화학, 롯데쇼핑, 용마산업은 선고 전 원고와 조정이 성립되면서 소송에서 제외됐다.

원고 측은 정부가 역학조사를 하지 않았고, 가습기살균제를 의약외품으로 지정하지 않은데다 유해성 심사도 부실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2016년 1심은 제조업체(세퓨)의 책임을 인정해 13명에게 5억4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면서도 국가의 책임은 공무원의 고의·과실이 없다며 국가의 배상 책임은 부정했다. 이에 원고 5명은 국가를 상대로 항소했다.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환경부가 PHMG·PGH에 대한 충분한 유해성 심사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환경부 장관 등은 이 사건 화학물질이 음식물 포장재 등 일정한 용도로 사용될 것을 전제로 유해성이 낮고 환경에 미칠 영향이 적으므로 유독물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심사·평가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이 사건 화학물질이 심사된 용도 외로 사용되거나 최종제품에 다량 첨가되는 경우에 관한 심사는 따로 이뤄지지 않았고, 유해성이 충분히 심사·평가되거나 안전성이 검증된 것도 아니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럼에도 환경부 장관 등은 이 사건 화학물질이 ‘유독물 등에 해당하지 않는 물질이다’라고 일반화해 공표했다”며 “이로써 마치 국가가 해당 물질 자체의 일반적인 유해성을 심사·평가해 그 안전성을 보장한 것과 같은 외관이 형성됐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재판부는 그 이후로 이 사건 화학물질이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은 채 수입·유통될 수 있었고 가습기살균제 제조자도 이를 원료로 사용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무독성’, ‘유해한 화학물질 함유되지 않음’ 등의 표현으로 가습기살균제를 광고하고 이를 믿은 일반 소매자들에게 가습기살균제를 판매하는 데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아울러 국민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예견가능함에도 이를 10년간 방치한 것은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제품 출시 당시 역학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점은 1심과 마찬가지로 당시 법령상 위법하지 않다고 봤다.

배상 금액 범위와 관련해서는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에 따라 구제급여를 받았다면 그 액수를 빼고 배상액을 정해야 한다고 봤다. 이에 따라 소송을 제기한 두 가족 중 한 가족은 급여가 많이 지급됐다며 배상 대상에서 제외했다.

가습기살균제는 지난 1994년부터 판매가 중단된 2011년까지 천만 병 넘게 팔렸다. 제조업체는 원료 화학성분이 안전한 지 검증도 하지 않은 채 제품을 만들어 팔았다. 17년 동안 위험한 제품이 버젓이 팔려 대형 참사가 발생했음에도 정부는 위험을 알지도 막지도 못 한 셈이다.

◇ 피해자 측-피해자단체 “판결 환영”

환경시민단체와 피해자 단체가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원앞삼거리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 세퓨 제품피해 국가책임 민사소송 2심 판결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알티케이뉴스 남기현 기자
환경시민단체와 피해자 단체가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원앞삼거리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 세퓨 제품피해 국가책임 민사소송 2심 판결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알티케이뉴스 남기현 기자

이날 판결에 대해 피해자측과 피해자단체는 일제히 환영했다.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인 송기호 변호사는 “사법부가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국가에 의해서 일어났다’,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최초로 확인해 준 매우 뜻깊은 판결”이라고 말했다.

이어 송 변호사는 “가해 기업으로부터 보상을 받는 것을 지원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국가가 법적 의무자로서 배상해야 할 법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이날 판결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 배상 책임을 물은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환영했다.

다만 피해자들은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의 구제급여조정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재판부가 배상 대상을 일부 피해자로 한정하고, 배상액도 300만~500만 원 소액으로 산정한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했다.

피해자들은 “앞으로 대법원에서 이 부분이 바로잡혀 국가배상 대상을 제한하지 말고 제대로 된 위자료를 지급하도록 하는 판결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국가 책임을 묻는 소송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는 판결문을 검토한 뒤 상고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습기살균제 관련 제조사의 책임을 인정하는 사례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서울고법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기소된 SK케미칼 홍지호 전 대표와 애경산업 안용찬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을 뒤집고 각각 금고 4년형을 선고했다.

이번 법원 판단은 다른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진행 중인 가습기살균제 관련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가가 피고로 포함된 가습기살균제 손해배상 사건은 서울중앙지법 1심에만 최소 6건이 계류 중이다.

환경시민단체와 피해자 단체가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원앞삼거리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 세퓨 제품피해 국가책임 민사소송 2심 판결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알티케이뉴스 남기현 기자
환경시민단체와 피해자 단체가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원앞삼거리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 세퓨 제품피해 국가책임 민사소송 2심 판결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알티케이뉴스 남기현 기자

다만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한 이번 판결의 원고들이 세퓨가 유해화학물질인 PHMG·PGH를 원료로 제조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피해자들이라는 것이다. 옥시와 애경, SK케미칼 등은 또 다른 유해화학물질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으로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했기에 이 제품을 쓴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 배상책임 문제는 별개로 다뤄져야 한다.

송기호 변호사는 “이번에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들이 국가배상을 받으려면 또 소송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므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 어떤 성분을 원료로 한 제품을 썼는지를 따지지 않고 국가가 포괄적으로 배상하는 입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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